▲가을이 되어 누렇게, 아니 노랗다 싶도록 잘 익은 나락을 보면 설레기 마련이지만, 이런 논이 되도록 가을까지 뿌리는 농약 냄새를 맡다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최종규
풀밭이 없으면 들꽃이 피지 않습니다. 들꽃이 피지 않으면 벌이나 벌레나 나비가 살지 못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셔요. 들꽃이 없는데 벌은 어디에서 꽃가루를 모아서 '꿀'을 빚을 수 있을까요? 설탕을 먹여서 빚는 꿀이면 될까요? 벌이 들꽃에서 모은 꽃가루가 아니라, 설탕으로 쟁여서 만드는 꿀이 되어도, 이러한 꿀을 꿀이라고 할 만할까요?
감자와 고구마조차 비닐집에서 키워서 때도 철도 없이 아무 때나 먹어도 될는지요? 한겨울에 비닐집에서 석유로 난로를 때서 키우는 딸기를 아직 봄도 안 된 철에 먹어야 맛있을는지요?
우리는 무슨 짓을 하는 셈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먹는 셈일까요? 능금이나 배나 복숭아나 포도를 먹는가요, 아니면 비료와 농약과 항생제를 먹는가요? 햇볕과 비와 바람과 흙이 베푸는 기운으로 자란 능금이나 배나 복숭아나 포도가 아니라, 비료랑 농약이랑 항생제로 자란 능금이나 배나 복숭아나 포도를 먹으면 우리 몸에 무슨 이바지를 할까요?
빗물이 아닌 수돗물을 마시며 자라는 벼를 쌀로 깎아서 지어 먹는 밥이 우리 몸을 살찌울 수 있을까요? 빗물도 못 마시고 햇볕도 못 쬐며 바람 한 줄기조차 모르는 채 비닐집에서 아무 때나 척척 나오는 애호박이나 상추나 오이나 가지나 토마토를 먹는 몸은 얼마나 튼튼하거나 씩씩할 수 있을까요?
농촌 사람들은 밭에서 일하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 요즘 젊은 농부들은 여유도 없고 자유도 없습니다. 온갖 서류와 장려금에 얽매여 있습니다. (155, 303쪽)장담하건대 땅은, 대지는 어린이들에 의해 꾸준히 보전될 것입니다. (165쪽)아이들은 맨발로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흙을 밟으며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풀밭에서 뒹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나무를 타며 놀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쇠붙이와 플라스틱과 합성수지를 써서 만든 놀이터에 아이들을 내몰기만 합니다. 어른들은 골목을 아이들한테 빼앗고는 '돈 내고 들어가야 하는 놀이시설'에 아이들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빽빽 소리만 지리도록 시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연날리기는 할 줄 모르지만 학원을 다닐 줄 압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팽이를 깎을 줄 모르지만 학교를 다닐 줄 압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빗물을 혀로 받아서 마실 줄 모르지만 손전화를 다룰 줄 압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풀벌레 노랫소리를 귀여겨들을 줄 모르지만 대중노래와 광고노래를 똑같이 따라할 줄 압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구름을 올려다볼 줄 모르지만 찻길을 가득 메운 자동차를 가려낼 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