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어렵다 해도 역사의 법정에는 세워야죠"

[아이들은 나의 스승 48] 4대강 사업 책임에 관한 고등학생들의 갑론을박

등록 2015.09.11 14:43수정 2015.09.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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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대요. 사고는 자기가 쳐놓고는 애꿎은 우리더러 돈 내놔라는 거잖아요. 당장 5조 3천억 원이라는 돈을 세금으로 메워준다고 하니, 갓 태어난 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우리 국민 한 사람 당 10여 만 원씩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와요. 대통령이 한 일이면 죄다 용서되는 건가요?"

아침 일찍 등교해 도서관에서 신문을 뒤적이던 한 아이가 단단히 화가 났다. 4대강 사업으로 생긴 수자원공사의 빚 중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갚아준다는 기사를 읽은 모양이다. 그를 더욱 화나게 한 건, 이렇게 중요한 내용이 신문마다 1면이 아닌 눈 크게 뜨고 샅샅이 뒤져야 비로소 찾아볼 수 있는 사회면 구석에 배치돼 있는 점이었다. 그런 이유로 자기 호주머니에서 10여 만 원씩 빼간다면 발끈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신문들도 문제라고 말했다.

"애초 4대강 사업에 대해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의 반대가 끊이지 않았고,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강행한 사람들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잖아요. 엉망진창이 돼버린 강도 모자라, 공사 빚도 국민이 갚아주고, 대통령을 비롯한 책임자들에게는 법적 책임도 묻기 어렵다니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아이가 끼어들었다.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의 '나쁜' 결과에 대해 모조리 책임을 묻는 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다며, 그와는 언뜻 상반된 주장을 폈다. 사실 누군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대놓고 두둔하는 건 또래 아이들 앞에서 무척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주위 친구들은 그의 이야기를 무찔러 버리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4대강 사업은 결과적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천문학적인 돈만 낭비한 셈이 됐죠. 대통령의 오판이 불러온 재앙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죠.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쓴 대통령의 오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책임을 대통령에게 법적 처벌로 물을 수는 없다고 봐요.

그렇다면 어떤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정책을 추진하겠어요. 대통령이 굳이 필요 없을지도 몰라요. 국가의 모든 정책을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게 하면 되잖아요. 그럼 결과에 대해 책임도 '1/n'로 분담하면 되고요. 혹 조그만 동네에서의 정치적인 실험이면 모르겠지만, 그게 국가일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내내 입버릇처럼 '이명박이 잘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친구들 앞에서 '이명박을 두둔해보기는 태어나 처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도서관에 모인 몇몇 아이들의 대화 내용을 수업시간 토론 주제로 가져가봤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법적 처벌을 할 수 있는가'로 정했다.


4대강 사업의 결과를 놓고 처벌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접근하면 토론은 '싱겁게' 끝날 수밖에 없다. 이명박 하면 '명박산성'과 '삽질'을 가장 먼저 떠올리며 특정 동물에 빗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는 아이들이다. 그보다는 처벌의 '가능성' 여부로 토론을 시작하면 다른 이야기들이 고구마 줄기 불거져 나오듯 이어지리라 여겼고, 과연 그랬다.

예상대로 '가능성' 여부에 대한 질문을 아이들은 '당위'로 대답했다.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에 아침 도서관에서 만난 두 아이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했더니,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순간 차분해졌다. 조금 놀라웠던 건, 처벌해야 한다는 만장일치 주장과는 달리, '결국' 처벌할 수 없을 거라는 의견이 훨씬 더 많았다는 점이다.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면서도, 딱히 왜 그런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모두 경험상 추측일 뿐이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돈 있고 힘 있으면 법망을 피해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다 빠져나오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에게 그런 '혜택'이 없겠냐고 반문했다. 또, '가재는 게 편'인데 누가 누구를 처벌하겠느냐며, 마치 평론하듯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비리가 확인된다 해도 대통령이 법적으로 연루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일축했다. 영화 <베테랑>을 세 번이나 관람했다는 한 아이는 명색이 대통령인데 아무렴 주변에 '최 상무'같은 사람 한둘 없겠냐고 말했다. 그는 '법은 언제나 강자의 편'이라면서 처벌하려면 오로지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불복종 운동뿐이라는 '살벌한' 결론을 내렸다.

개중에는 대통령보다 그에 빌붙어 '단물 빨아먹은' 사람들과,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직언하지 못하는 무능한 참모들이 더 문제라는 발언도 있었다. 권력에 아부해 감투를 쓰고, 그걸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이들과 '영혼 없는' 관료들이 득시글거리는 상황에서, '좋은' 대통령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거다. 이명박을 두둔하는 거냐는 친구들의 지적에, 그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며 한발 뺐다.

"전 수자원공사가 더 이해 안 돼요. 빚을 떠안을 게 불 보듯 환했다면 미리 막아야했고, 어떻든 막지 못해 빚이 생겼다면 국민들에게 손 벌릴 게 아니라 사업을 강제한 이들에게 갚으라고 해야 상식적이지 않나요? 그 많은 직원들 중에 누구 하나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게 회사인가요, 좀비들 집단이지. 재미있는 건, 저희 사촌 형이 그런 회사 들어가겠다고 몇 년째 난리거든요."

우리 국민들이 세금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탓이라는 분석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자신의 부모님을 예로 들며, 국가가 세금을 어떻게 얼마나 거두어 가는지에만 관심을 둘 뿐, 거둔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금 고지서에 대한 관심의 1/10만큼이라도 국가의 예산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4대강 사업은 애초 말조차 꺼내지 못했을 거라 강조했다.

아이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미워하진 않았다. '대한민국에 뭘 기대하냐'며 냉소를 보이는 많은 아이들 속에, 그의 무능과 오만을 통해 애써 우리 사회와 자신을 성찰하려는 아이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에게 몰표를 던졌으니,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거라는 일침도 잊지 않았다.

"법적 처벌이 어렵다 해도 그를 역사의 법정에는 반드시 세워야 해요. 4대강 사업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이 땅에서 벌어지지 않도록 시작과 끝을 낱낱이 역사에 기록해 두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에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적고 있는지 아세요? 읽다 보면 살짝 어이가 없어요.

저는 법적 처벌보다 외려 역사 교과서의 서술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국정교과서 전환을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정부가 교과서 서술을 독점하면 정권의 성향에 따라 교과서가 손바닥 뒤집듯 내용이 바뀌거나, 아니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천 년 만 년 우리 역사를 미화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 역사에서 무슨 교훈을 배우겠어요."

그가 언급한 단원은 솔직히 학기 중에 단 한 번도 가르쳐보지 않는 부분이다. 시험에 출제되지 않는 교과서의 맨 끝이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고 부러 찾아 읽어보았다. 그는 살짝 어이가 없다며 '너그럽게' 말했지만, 교사인 난 많이 당혹스러웠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 본다. 주지하다시피,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8종 검정 교과서 중의 하나다.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앞세우며 선진 일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국민을 섬기는 정부, 자유 무역 협정(FTA) 등을 통한 열린 시장, 능동적 복지, 교육의 경쟁력 강화, 친환경 녹색 성장 등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4대강 사업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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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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