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허원근 일병의 아버지 허원춘 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 앞에서 허 일병 군 의문사에 내린 대법원 판결에 의견을 밝히며 국방부 조사본부의 조사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욱군 7사단 3연대 1대대 3중대에서 근무하던 허 일병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1984년 4월 2일 오전 11시경이었다. 그는 중대본부 내무반 근처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은 채 숨져 있었다. 당시 육군은 세 차례에 걸쳐 허 일병이 자살했다고 결론 내렸다. 1990년 육군 범죄수사단, 1995년 육군본부 법무감실의 재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00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 판단은 달랐다. 허 일병의 아버지 허원근씨의 진정으로 조사를 개시한 의문사위는 2002년 9월 10일, 허 일병은 누군가의 총에 맞아 숨졌다고 발표했다. 1984년 4월 1일 밤 내무반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은 과정에서 허 일병이 오른쪽 가슴에 M16 소총을 맞고 쓰려졌다는 것이었다. 의문사위는 중대장 등이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내무반을 물청소하고, 허 일병을 폐유류고 뒤로 옮긴 다음 왼쪽 가슴과 오른쪽 머리에 M16 소총으로 두 발을 더 쏘았다고 했다.
국방부는 의문사위가 그해 8월 20일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자마자 곧바로 특별조사단을 꾸렸다. 그리고 의문사위 최종 발표 한 달 뒤, '내무반에서 총기사고는 없었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2년 11월 28일 내놓은 최종 결론 역시 기존과 똑같았다. 군이 계속 허 일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하자 의문사위도 재조사에 들어갔다. 이들의 결론도 그대로였다. 2004년 6월 28일, 의문사위는 다시 한 번 허 일병이 누군가의 손에 총을 맞고 숨졌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