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
권우성
"이제 행정의 힘만으로 거대도시 서울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없습니다. 혁신을 통한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참여가 시대적 흐름인 이유입니다."박원순 서울시장 4년차. 그동안 서울특별시의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혁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정 구석구석에 '혁신'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시청 신청사 2층에는 혁신기획관실이 들어서서 '혁신'을 진두지휘하고 있고, 은평구 3만평부지에 자리 잡은 서울혁신파크는 '혁신'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박 시장은 급기야 지난 6월 영국 <가디언>지로부터 '세계 5대 혁신시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조직이나 단체들은 어려움에 당할 때마다 너도나도 혁신으로 스스로를 확 바꿔보겠다고 부르짖는다. 선거를 앞둔 정당들도 혁신 대열에 동참한다. 그럼 과연 서울시가 말하는 혁신은 무엇이고 왜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일까.
지난 3일 기자와 만난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 박원순표 서울 혁신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그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관계의 단절'로 풀이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개인들이 지나치게 고립됐고, 그로인해 관계가 단절되다보니 많은 문제가 파생됐다는 것이다. 그 대부분의 문제는 고스란히 서울시의 어깨 위에 놓이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전 기획관은 이같이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혁신으로 본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끼리의 관계가 회복된 '보다 인간적인 도시'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사실 간단하고 작은 것들이다. 외로운 노인과 갈 곳 없는 청년들이 같이 살고, 손편지 쓰기로 층간소음문제를 해결하고, 이웃과의 공유로 주차장 부족을 해소하고, 시민의 제안으로 새벽에도 다니는 버스를 만들고…. 작은 물방울들이 모이면 거대한 물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위해 마을공동체센터, 청년허브, 인생이모작센터와 같은 중간조직을 만들어 민간단체들을 지원하는 것이 혁신기획관실의 일이다.
전 기획관은 서울시의 혁신 사업이 "지금은 확산되는 단계라고 본다"며 "확산되면 반드시 시스템 변화를 가져오고 새로운 행정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서울시가 선도하면 다른 지자체들이 따라오는 '서울모델'이 만들어진 것 같다며 뿌듯해 했다.
'박 시장이 퇴임하면 혹시 다 흐지부지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마을공동체사업 모델은 경기, 대구 등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지자체에서 오히려 훨씬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게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청년정책 지원기관인 '청년허브' 센터장을 지낸 뒤 작년 7월 부임한 전 기획관은 남은 임기 중 "민간 역량을 강화하는 보다 전향적인 조치로 혁신 노력이 단발로 끝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전 기획관의 일문일답.
성미산마을에 학교폭력이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 서울시가 말하는 '혁신'은 무엇인가."혁신에는 기술혁신도 있고, 행정혁신도 있다. 서울시가 주목하는 혁신은 사회혁신이다. 사회 문제를 국가가 행정의 힘으로 푸는 방법도 있고 시장이 경제논리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국가나 시장이 그 기능과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할 때, 다양한 해법들을 새롭게 찾아보는 것이 사회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는 마을공동체나 사회적경제 같은 조직을 통해, 그리고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해법을 찾을 수도 있고, 작게는 자유로운 시민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찾을 수도 있다."
- 서울은 왜 혁신이 필요한가."서울은 문제가 많은 도시이기 때문이다.(웃음) 고령화 문제, 지나친 경쟁, 도시빈민, 공해 등등 도시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고 행정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또한 그 다음 서울의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참여와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서울혁신기획관실은 사회혁신, 공유도시, 마을공동체, 청년생태계 조성, 거버넌스, 갈등조정 등 낯선 일들을 추진하는 조직들이 있다.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사실 서울시와 같은 거대 도시가 사회혁신이나 공유도시와 같은 플랜을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마도 사회혁신이나 협치의 실험이 행정영역과 결합되게 된 것은 박원순 시장이 희망제작소와 같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왔던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새로운 시도는 아직은 불충분하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제적으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요즘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과 나라에서 이런 일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 그리고 서로 연결해서 효과를 만들어낼지 묻는 일들이 아주 많아졌다.
이런 사회적 흐름이 새로운 가치영역과 새로운 행정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민간에서 새로운 움직임들이 아주 활발해지고 있으며, 이런 흐름들은 한국사회에 아주 결정적인 변화를 만들 사회적 기반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흐름은 때로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고 곤란을 겪기도 하지만, 이런 흐름들이 연결되고 상호학습하는 장이 마련된다면, 담론이나 말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