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표란 각자가 선명하다.
전갑남
금표는 이곳이 신성한 곳이니까 함부로 드나들지 말라는 뜻도 있었을 법하다. 마니산 정상에 단군께서 참성단을 쌓아 하늘에 제를 지냈다는 곳이 아닌가!
이곳에서 천제암궁지까지는 400m라는 안내판이 또 있다. 전의 안내판은 금표까지를 말한 듯하다.
재궁터, 하늘에 국태민안과 감사하는 마음이금표에서 다시 계곡을 끼고 오른다. 크게 가파르지 않은 길을 가는데도 땀이 흥건하다. 한참을 가쁜 숨을 몰아 오르니, 그리 넓지 않은 평탄지에 천제암궁지가 있다. 인천광역시기념물 제24호라는 문화재 안내판이 서있다.
천제암궁지(天祭菴宮址)는 마니산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지낼 때 쓰던 제기(祭器)를 보관하고, 제물(祭物)을 준비하는 재궁(齋宮)터다. 재궁터가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단다. 다만, 고려 말 이색이 마니산 기행 때 지은 '재궁(齋宮)에 차운(次韻)하다'는 2편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시가 알려져 고려 때부터 재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중기 이형상(李衡祥)의 강도지(江都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하도면에 속한 마니산에 천재궁이 있다. 우리 태종대왕이 고려 말에 대언벼슬을 하고 계실 때 이곳에서 제를 지내기 위해 머무셨다."(天齋宫在摩尼山 屬下道面 祭官齋宿之所 我太宗大王 麗末以代言 齋宿于此)이는 태종이 왕에 오르기 전, 마니산 이곳 천재궁에 머물면서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다. 또, 연산군 6년(1500)에는 재궁의 전사청(典祀廳)을 고쳐 지을 때, 수군이 직접 양식을 가지고 다니면서 매우 힘들게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곳 재궁을 나라에서 관리했음을 알 수 있다.
천재암궁지는 3단 축대로 돼 있고, 네 개의 돌기둥이 서 있다. 돌기둥은 아랫단 축대 밑에 있다. 맨 위 축대에는 기왓장 조각들을 모아 놓았다. 예전 건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