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고흥에 와서 자리를 잡을 무렵, 읍내에 이런 멋진 나무가 있어서 아주 반가웠습니다. 그무렵 아직 기어다니던 작은아이는 나무 둘레를 볼볼 기면서 놀고, 큰아이는 나무를 타며 놀았습니다.
최종규
전남 고흥 읍내에는 머지 않아 구백 살이 될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아이를 새로 낳고, 다시 한 번 아이를 낳을 무렵에는 천 살이 되겠구나 싶은 느티나무입니다.
이 나무한테는 천연기념물 같은 이름이 붙지 않습니다. 우람한 느티나무 둘레에서 이런저런 공사를 벌일 적마다 굵고 커다란 줄기는 아프게 잘립니다. 가게를 가린다든지 큰 짐차가 지나갈 때 걸리적거린다고 여기지 싶습니다. 지난해부터 이 느티나무 바로 옆에 정자가 생기면서 대낮부터 느티나무를 둘러싸고 술판이 벌어지기 일쑤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아기 적부터 우람한 느티나무한테 찾아가서 나무를 안거나 타면서 놉니다. 읍내에 볼일이 있어 찾아갈 적에 으레 들러서 나무한테 인사합니다.
나무가 있는 풍경나무가 있는 곳하고 나무가 없는 곳은 바람이 다릅니다. 나무가 있기에 한결 짙푸른 바람이 붑니다. 나무가 없기에 더욱 땡볕이 따가우면서 메마른 바람이 흐릅니다. 나무가 우거진 길에는 새와 풀벌레가 찾아들어 싱그러운 노래를 베풉니다. 나무가 없는 길에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먼지 바람만 가득하고 시끄럽습니다.
정부희님이 쓴 <곤충들의 수다>라는 책을 읽으니, "겨울이 오기 전 초가지붕의 볏짚을 갈았습니다. 썩은 볏짚을 걷어낼 때마다 헌 지붕 속에 있던 엄지손가락만 한 굼벵이가 지붕 아래로 뚝뚝 떨어졌지요. 그러면 어른들은 그 굼벵이를 집어 들어 산 채로 입에 넣고 꿀꺽 삼키셨습니다. 볏짚만 먹고 자라 몸에 좋고 생고구마 맛이 난다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261쪽)" 몹시 놀랐다고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린 날 굼벵이한테 놀란 어린 계집아이는 딱정벌레와 풀벌레를 귀엽게 돌보면서 살피는 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