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장구채《한반도 고유종 총람》, 국립생물자원관, 2011, 울릉장구채 풀이
국립생물자원관
거의 모든 풀꽃 풀이가 이런 지경입니다. 이렇게 일본말 투성이로 우리 풀꽃을 풀이해야 옳은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이번에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에서 이 부분도 조금 짚었습니다. 사실 더 강력하게 국가기관에 따지고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일제 침략의 역사를 털어내지 못하고 아직도 일본말을 번역한 풀꽃이름을 그대로 쓰고 또 그 풀이조차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 이 책을 쓴 것입니다. <조선식물향명집, 1937>은 그런 과정에서 하나의 예로 든 것일 뿐 이 책을 비난하거나 옹호하거나 하는 차원에서 접근한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그런데 최종규 선생은 제가 마치 이 책을 비난한 것처럼 말하면서 이 분들의 노고를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주문을 하셨습니다. 백번 공감합니다.
그러나 저처럼 이 책을 수십, 수백 번 밑줄을 치고 읽으면서 샅샅이 일본말과 조선말(당시 표기)을 견주고 "우리 풀꽃이름이 생긴 과정"을 살펴보았다면 선생처럼 '옹호'의 마음만이 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백번 물러서서 이분들의 땀과 노고를 깎아 내렸다고 칩시다. 그렇더라도 서운해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이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여 지금까지 그 이름을 보존해주고 있으니까요. <조선식물향명집>을 만든 이들의 공로는 1937년 이래 2015년 현재까지 78년간 산림청 <국가표준식물목록>,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따위에서 고이 보존하여 기리고 있지 않습니까? 등대풀도 그렇고 칼송이풀도 그렇고 개불알풀도 그렇고 말입니다. 78년간 이 분들의 공로를 인정해오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제가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에서 지적한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대관절 얼마나 많은 풀꽃이 일본말에서 나왔으며, 또 그 풀이는 또 얼마나 많은 일본말로 오염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국가 기관처럼 수많은 인재를 데리고 있지도 못하여 그 많은 풀꽃이름을 샅샅이 조사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오염되어 있는 우리 풀꽃이름과 풀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기에 제가 전공하는 일본어를 무기로 조선총독부가 만들어 놓은 1922년 <조선식물명휘>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을 뒤져 겨우 문제 제기 형식으로 내놓은 책이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입니다.
이런 것을 조금 밝혔다고 해서 나라의 자존심이 상하는 게 아니라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을 비롯한 책에서 일본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풀꽃이름을 손보지 않고 78년 동안 금과옥조로 모셔오고 있는 현실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지각 있는 사람들은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