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헌씨와 어머니 전길순(66),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고 치유합니다.
조호진
소년 또한 웨이터와 소년깡패 생활을 했고, 선배 사채업자를 따라다녔습니다. 어차피 버림받은 밑바닥 인생, 소년원까지 갔다 왔으니 겁주고, 패고, 뺏는 양아치와 건달이 인생 수순이었는데 소년은 가구공장 노동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렇지만 잔업으로 청춘을 죽이고, 짬밥으로 설움을 달래고, 기숙사에서 그리움을 파묻고 잠들기란 힘들었습니다.
소년원 어머니들이 생각났습니다. 신앙인인 소년원 어머니들은 음식을 가져와 자식에게 먹이듯이 먹이고, 편지를 보내주고, 부모와 자식을 잇는 통신원이 되어주고, 옷이 없는 퇴원생에겐 옷을 사주고, 차비를 주면서 바른 인생으로 인도하려고 애썼습니다. 어머니들은 아들이라 부르며 안아주었고 소년들은 엄마라고 부르며 안겼습니다. 면회 올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생일을 특별하게 챙겨주면서 소년들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소년도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버리고 떠난 어머니가 원망스러워 어머니의 '어'자도 꺼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머니의 '어'자만 발음해도 눈물 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년은 군기반장 총반장의 권위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맹수 같은 얼굴을 했고, 어머니들은 그런 소년이 겁나서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저 기헌인데요. 광주(경기도)에 있는 가구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요!"당시, 10년째 소년원 아이들을 돌보는 전길순(66) 어머니에게 전화하자 음식을 싸가지고 달려왔습니다. 어머니는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년원의 전설이 술집과 뒷골목이 아닌 공장에 있다니? 소년은 한걸음에 달려 와준 어머니가 눈물 나게 고마웠습니다. 험난한 세파를 홀로 헤치며 살아야 하는 독불장군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운 줄 아십니까?
"누군가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소년은 어머니에게 고백했습니다. 저, 사실은 너무 외로워요. 이 세상이 너무 힘들어요. 저 좀 안아주세요. 저도 무언가가 되고 싶어요. 맹수처럼 사나운 척했던 것은 세상이 무서워서 그랬던 거예요. 소년은 주말이면 어머니 집에 가서 가족들과 어울렸습니다. 기숙사의 잠과 가정의 잠은 달랐습니다. 공장 짬밥과 어머니의 따뜻한 밥은 천지 차이였습니다.
"저 아이를 우리마저 버리면..." 소년 지켜준 어머니와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