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이 사진은 다다음날 하도리 근처 해변에서 찍은 사진
황보름
달리기를 뛰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씻고 누웠다. 4인실이었는데도 메르스 영향으로 나 혼자 독채를 쓰게 됐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으니 배가 살살 고파왔다. 그때, 뜻밖에도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반이나 싸요. 고기 맛도 좋고요. 다른 손님들하고 저하고 같이 가서 저녁 안 먹으실래요?" 그렇게 7명이 고기 판 앞에 둘러앉았다. 마을 이장님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고깃집엔 마을 주민들이 거의 다 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만 외지 사람 티를 팍팍 내며 사장님이 손수 구워주는 고기에 젓가락을 갔다 댔다.
"고기 맛 어때요, 괜찮죠?""네에~"사장님은 이곳 고기가 다른 데에 비해 얼마나 맛있고 또 얼마나 저렴한지 구구절절 설명을 하며 열심히 젓갈을 변신시키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고기를 시키면 쌈장과 함께 이름 모를 젓갈이 딸려 나온다. 고기 소스이다. 제주에 온 이튿날 나는 이 젓갈에 고기를 찍어 먹어 보긴 했지만, 너무 비려 그 뒤론 다시 먹지 않았다.
사장님은 그 갈색 젓갈을 우선 끓였다. 그리곤 그곳에 마늘과 고추를 듬뿍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론 소주를 부었다. 비린 맛을 없애주는 덴 역시 소주라고 말하며. 그리고 다시 한 번 끓은 젓갈. 이제 찍어 먹기만 하면 된단다. 사장님을 믿고 나도 한 번 찍어 먹어 봤다. 오, 정말 비린 맛이 잡혔다.
역시 현지 음식은 현지 사람과 함께 와야 제대로 그 맛을 보게 되는 것 같았다. 음식도 현지 사람이 추천한 곳엘 가면 실패할 일은 없지 않을까. 그 어떤 맛집 블로거도 이장님이 하는 이 고깃집을 찾아낼 수는 없을 테니까.
알고 보니 우리 7명이 다 손님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손님은 나와 사회복지사이자 아마추어 사진가 한 분뿐이었고, 두 명은 장기수와 그의 친구, 또 다른 두 명은 사장님의 친구라고 했다.
내 앞엔 사장님의 친구가 앉아 있었다. 나보다 더 하얀 얼굴의 그분이, 초반엔 그렇게나 수줍어하던 그분이,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 그가 말을 한 바가지를 쏟아 내면, 옆에서 사장님은 "말이 많다"며 추임새를 넣어 주었고, 그는 잠시 입을 닫았다가 또 말을 한 바가지 쏟아 냈다.
그의 말은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서도 계속 이어졌다. 사장님 어머니도 그에게 "말을 조금만 하라"고 주문을 했지만 허사였다. 게스트하우스 정원에 마련된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는 말이 많은 그의 입을 안주 삼아 맥주를 부딪쳤다.
그의 이야기는 어느새 사진을 향한 열정으로 이어졌다. 사회복지사이자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분의 사진을 보던 그는 자기가 찍은 사진을 꺼내 보여 주었다. 정방 폭포에서 찍은 그의 사진은 사진을 볼 줄 모르는 내가 봐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럼 그렇지. 그의 사진은 아마추어 사진 작가전에서 4위를 한 사진이라고 했다.
사장님과 그의 또 다른 친구분도 사진에 조예가 깊었다. 장기수 역시 사진 장비로만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쓴 사진 애호가였다. 7명 중 5명이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사진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나 하나만 여행지에 와서도 사진 찍는 걸 자꾸만 잊어버리는 사진 문외한이었다.
사진을 향한 대단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사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오는 잔잔한 빛만이 테이블을 비추고 있었다. 이야기는 밤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며 나는 오늘 내가 우울했던 이유는 어쩌면 말을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말이 많은 그분이 잠시 쉬는 틈엔 나도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우울함이 어느새 걷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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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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