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어귀에서 자라는 배롱나무. 언제나 오래도록 고운 꽃을 피우면서 마을을 밝힌다.
최종규
도서관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 아이는 저만치 앞서 달린다. 이제 마을 논에도 나락이 제법 자랐다. 요즈음 나락은 유전자를 건드려서 키가 무척 작지만, 그래도 아이들 키하고 엇비슷하다. 먼 발치에서 바라보니 작은아이 머리가 빼꼼 보인다. 작은아이는 자동차를 한손에 들고 빨래터 울타리에 굴린다. 배롱꽃이 곱게 흐드러지고, 큰아이도 어느새 작은아이 앞으로 달려 나와서 까르르 웃는다. 여름이 저물려고 한다.
그런데, 늘 마을에서 지내면서 집과 도서관 사이를 오가다 보면, 마을 어귀에 자동차를 댄 '도시 사람'을 곧잘 볼 수 있다. 이들은 왜 이 깊은 시골마을까지 찾아올까? 우리 마을에서 흐르는 싱그러운 샘물을 떠 갈 생각일까? 어쩌면 샘물을 떠 가는 사람도 있겠지.
오늘 두 아이하고 빨래터 물이끼를 걷으러 가서 웃통을 벗고 신나게 물이끼를 걷는데,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저기 배롱나무 가지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약으로 쓰게" 하고 묻는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대뜸 배롱나무 가지를 달라고 하는 까닭은 뭘까?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을 배롱나무 가지가 좀처럼 늘지 못하고 자꾸 꺾이거나 줄어든다고 느꼈다. 아하,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몰래 베거나 잘라 갔는가 보구나.
약 되는 나무? 나무 사랑하는 마음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