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가 상수도 시설트라이시클이 분주히 왔다갔다하는 도로 한편, 비닐 호스로 이어진 상수도시설이 보인다. 일부 지점에서는 하수 시설에 상수용 비닐호수가 이어져 있어, 식수오염도 우려되고 있다
이철재
이 비닐호스로 도시 지역 밖에 있는 빈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해 준다. 필리핀의 수돗물은 사정이 좋지 않다. 섬나라라는 특성 때문에 상수도 보급률은 43%(2013년 기준. KOICA 자료)에 불과하다. 대도시인 마닐라의 경우 80~90% 이상인 지역도 있지만, 일찍부터 민영화돼 수돗물 값이 꾸준히 상승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더욱이 수돗물 품질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유정 간사는 "필리핀에서 2년여 동안 활동하면서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사람은 단 한명 밖에 못 봤다"고 말한다. 실제 대형 마트에서는 500ml에서부터 20리터짜리 등 다양한 종류의 생수를 판매하고 있다. 마트 내에서 생수 판매 코너가 가장 큰 편이다. 시골 지역에서는 수돗물을 정수한 물을 판매하기도 한다. 문제는 빈민들에겐 생수 구입비용조차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지하수조차 쓸 수 없는 지역빈민밀집지역과 들판 길을 따라 20여 분 걸어 들어가서야 '바칼 빗물 이용 시설'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 왔다. 50㎡ 넓이의 벽돌로 된 집은 아이들 공부방으로 사용되고 있고, 담벼락에 붙어서 높이 약 2m, 폭 1m, 길이 2m 가량의 원통형 스테인리스 빗물 저장 시설이 있다. 빈민지역이라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철조망을 천장까지 친 것도 특이하다.
에코피스아시아 이태일 사무처장은 "이 마을은 빗물받이 지붕을 설치할 수 있는 마땅한 건물이 없어서 이 공부방에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6톤 규모의 이 빗물 통을 옮기는 데만 12명의 마을 사람들이 동원됐다. 아시안 브릿지 필리핀 보나 사무국장은 "길이 좁아 차량이 들어 올 수조차 없어 마을 사람들이 통을 들고 1시간 동안 산길을 넘어 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