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방인을 반겨준 것은 '고양이'였다

막내와 함께하는 알프스 여행 ⑤

등록 2015.08.24 21:29수정 2015.08.2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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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켄 동부역 물에 비친 인터라켄의 동역의 모습
인터라켄 동부역물에 비친 인터라켄의 동역의 모습임재만

여행 다섯 째 날, 인터라켄에서 2박을 했다. 숙소가 도심에 있어 편리했지만 꽤 비싼 편이다. 도심에 있는 호텔은 1박에 이십만 원 이상 주어야 한다. 오늘 오전에는 브리엔츠 호수주변에 있는 마을을 돌아보고 오후에는 체르마트로 이동할 셈이다.

교외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동부 역으로 갔다. 야외수영장이 있는 브루그실리라는 마을로 가기 위해서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버스가 왔다. 버스는 우리나라 시내버스와 비슷한 구조와 모양이다. 수영장이 있다는 브리엔츠 호수 근처 마을에서 내렸다. 그러나 수영장으로 가는 안내판도 보이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마을은 어찌나 깨끗한지 휴지 한 장 보이지 않는다. 대청소를 한 듯 너무 깨끗하다.


호수 근처에 수영장이 있을까 싶어 마을길을 따라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고양이 한 마리가 슥 지나가며 쳐다본다. 너무 반가워 오라는 손짓을 해 보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걸어온다. 너무 뜻밖이다. 다가와서는 머리를 내 다리에 살갑게 문지르고 땅에 드러눕기까지 한다.

무한히 신뢰한다는 속내를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 만난사이인데도 오랜 사이 같다. 우리나라 들고양이는 눈치를 보다 도망가기 바쁜데, 참 재미있는 녀석이다. 고양이의 뜻하지 않은 행동에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어느 누가 있어 낯선 이방인을 이렇게 반겨 줄 수 있을까? 참 고마운 녀석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많은 여행자들을 만나기 때문에 익숙한 행동인지 모른다.

수영장은 호숫가에 있지 않고 숲속에 있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크지도 않고 사람도 많지 않다. 수영이나 한번 해볼 생각이었으나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차라리 시골 마을을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은 이따금씩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을 뿐 한산하다. 사람들은 다들 어디 갔는지 찾아 볼 수가 없다. 집 베란다에 걸린 예쁜 화분들만 우릴 보고 활짝 웃고 있다. 집들은 거의 짙은 갈색의 목조 주택으로 대부분 2층집이다. 마당에는 꽃도 있고 채소도 심어져 있다. 그리고 담장에는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시골마을의 집 호수근처 마을에 있는 어느 시골의 모습
시골마을의 집호수근처 마을에 있는 어느 시골의 모습임재만

호박 시골담장에  노오란 호박이  걸려있다
호박시골담장에 노오란 호박이 걸려있다 임재만

마을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 골목 한 귀퉁이에 무궁화가 피어 있는 것이다. 너무 반가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스위스에서 무궁화 꽃을 보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이국에서 뜻하지 않게 무궁화를 보게 되니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 가 없다. 혹시 한국 사람이 심어 놓은 것이 아닐까 하고 살펴보았다. 그러나 무궁화는 마을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도 무궁화 꽃을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무궁화 브리엔츠 호수 마을에서 만난 무궁화가 활짝 웃고 있다
아름다운 무궁화브리엔츠 호수 마을에서 만난 무궁화가 활짝 웃고 있다임재만

마을 속에 있는 교회를 지나 호숫가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조그만 한 선착장과 식당이 있다. 호수 건너편에는 요트도 있고 파라솔도 보인다. 휴양지가 아닌가 싶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위로 유람선은 어디론가 향해 멀어져가고 있다. 유람선을 따라 물끄러미 호수를 바라보았다. 맑은 호수에는 산 그림자가 길게 드러누워 있고, 산 위로는 뭉게구름이 어디론가 한가롭게 흘러가고 있다. 참으로 목가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 보니 벌써 점심 때가 되었다. 선착장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왔다. 정류장에는 마을 청년이 앉아 있었는데, 이어폰을 귀에다 꽂고 무언가를 열심히 듣고 있다. 말도 없고 표정도 참 진지하다. 버스가 몇 시에 있냐고 물어 보려다 그냥 참고 말았다.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동부 역으로 갔다. 기차를 타고 체르마트로 가기 위함이다. 체르마트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한다. 스피치와 비스프 역이라는 곳에서 말이다. 인터라켄 동 부역에서 오후 한 시가 넘어 출발했다. 기차는 호숫가를 달리는가 싶더니 30분도 채 안 되어 스피치 역에 도착한다. 스피치는 여러 철로가 있는 제법 큰 역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피치에서 내리고, 잠시 기다리자 비스프로 가는 기차가 플랫폼으로 쑥 들어온다. 비스프로 가는 열차는 1분도 지체하지 않고 사람들을 모두 태우고 곧장 출발한다.

이제 호수도 없고 만년설도 보이지 않는다. 산언덕에 있는 집들과 산들이 보일 뿐이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다시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한다. 비스프 역이다.  비스프에서 다시 갈아타고 체르마트로 달린다. 계곡도 나타나고 산세도 점점 험해진다. 그런데 차 안이 너무 춥다. 배낭에서 긴 옷을 꺼내 입었다. 그래도 춥다.

차안을 지나가는 차장에게 말했더니 화장실 근처에 있는 곳으로 가 무언가를 열심히 만지 작 거린다. 그러더니 에어컨 온도 조작이 잘 안 된다며 다른 칸으로 옮겨 보란다. 배낭을 들고 다른 칸으로 가 보았다. 온도가 딱 맞는다. 차장은 다가와서 어떠냐고 다시 물어 본다.  "굿"이라 했더니 씩 웃음을 보이며 다음 칸으로 사라진다. 고객의 불편함에 정성을 다하는 역무원의 모습에서 고마움까지 느끼게 된다.

체르마트로 가는 길에는 가끔씩 산 위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보인다. 스위스에는 곳곳에 케이블카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 높은 산이 많아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산비탈에는 포도밭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산 빛도 검어지고 계곡도 점점 깊어진다. 마치 강원도 탄광촌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무슨 일을 하며 살까? 생활이 많이 궁핍해 보인다. 초원도 거의 없고 산비탈에 밭도 많지가 않다. 그렇다고 광산도 보이지 않는다. 스위스에선 제일 오지가 아닌가 싶다.

산에는 나무도 없고 거의 바위들로만 되어 있다. 바위는 풍화가 많이 진행되었는지 자갈도 많고 푸석푸석해 보인다. 큰 비리도 내리면 금방이라도 "우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짙은 갈색의 집들이 많아지는가 싶더니 곧 체르마트에 도착한다.
 
마테호른 숙소롤 가는 길에 올려다 본 마테호른
마테호른숙소롤 가는 길에 올려다 본 마테호른임재만

도심거리 체르마트 도심 거리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도심거리체르마트 도심 거리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임재만

체르마트는 도회지라는 느낌보다는 산촌에 온 느낌이다. 그 것도 광산이 있는 산촌으로 검은 빛이 돈다. 역에서 나와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위를 올려다 보았다. 흰 눈을 살짝 걸친 커다란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언뜻 보아도 마테호른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건물과 산에 가려 온전히 볼 수 없지만 어느 영화에서 본 듯한 멋진 모습이다. 마치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든 탑 같기도 하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옮겨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체르마트는 해발 1600m에 위치해 있는 산촌마을이다. 그렇다 보니 인터라켄에 비해 날씨가 좀 쌀쌀하다. 여름에도 긴 소매 옷이 필요할 것 같다. 시내 거리는 여행자들로 만원이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명동거리 못지않다. 인터라켄과는 달리 중국 사람은 거의 없고 일본 사람들이 많다. 시내는 다른 상점은 거의 보이지 않고 음식점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식당에 들어 앉아 모두 파티라도 여는 듯 즐거운 표정들이다.

시내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새로 지은 건물이라 깨끗하고 직원들도 참 친절했다. 프론트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들어와 여장을 풀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방안 깊숙이 들어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산이 깊어 해도 빨리 지는 모양이다.
#체르마트 #브르그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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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다니며 만나고 느껴지는 숨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가족여행을 즐겨 하며 앞으로 독자들과 공감하는 기사를 작성하여 기고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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