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전규태 님 모습을 스스로 그렸다.
전규태
상원사에서 암자로 가는 산길은 몹시도 가파르고 숲이 우거져 으스스할 법도 했지만 달빛이 유난히도 밝아 아늑했다 … 혼자만의 오솔길에서 홀로 만난 단 하나의 달을 숱한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우러러볼 수 있다는 것은 신비하다. (43쪽)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젊은 여행가'도 아니고, '문학교수 여행가'도 아니며, '전문 여행가'도 아닌, '그저 삶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려는 할아버지'로서 여행길에 나선 전규태님이 마음으로 받아들인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죽음을 앞두었다고 여긴 할아버지한테 '무서움'이란 무엇일까요? 깊은 숲이 으스스하다고 느낄 만할까요? 깊은 숲은 으스스하고, 암은 안 으스스할까요? 처음에는 으스스하구나 싶던 깊은 숲도 걷고 걷다가 어느새 '혼자만 누리는 호젓한 숲길'로 다시 느끼고, 이 호젓한 숲길에서 올려다보는 달빛을 지구별 어디에서나 저마다 다른 눈길하고 마음으로 올려다보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여행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행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완전히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90쪽)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려고 길을 나서기에 여행이 되리라 느낍니다. 스스로 새롭게 살려고 마음을 먹기에 여행을 하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열 몇 시간을 날아가야 여행이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한 시간을 걸어도 여행입니다. 지구 맞은편까지 가야 여행이지 않습니다. 낯익은 마을길을 새로운 마음이 되어 걸어가도 얼마든지 여행입니다.
걷다가 숲이 있으면 쉬었다 가기도 하고, 산이 있으면 오르기도 하며, 개울을 만나면 다리 난간에 기대어 물속의 잡초나 느긋하게 노니는 물고기들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97쪽)요 며칠 동안 우리 집 곁님이 몹시 아픕니다. 허리가 몹시 결려서 아예 걸음을 떼지 못합니다. 여느 때에도 집일이나 집살림을 제가 도맡아 하는데, 걸음조차 못 떼는 곁님은 마룻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서 쉬를 하러 가야 합니다. 곁에서 누가 거들거나 돕지 않으면 거의 아무것도 못하는 몸이 됩니다.
방바닥과 마룻바닥 사이를 겨우 기어다니는 몸이 되면, 이러한 몸인 사람한테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자리에 드러누워 방에서 꼼짝을 못하는 사람한테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여행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행은 안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이나 중국이나 대만쯤 가보아야 여행이 아닙니다. 미국이나 프랑스나 영국쯤 가보아야 여행기를 쓸 만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낯설다고 하는 나라를 다녀와야 다큐멘터리를 찍을 만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마당을 한 바퀴 돌 수 있어도 '대단히 고마운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대문 밖을 나서서 마을을 한 바퀴 돌 수 있어도 '아주 뜻있는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버스를 한 번 타고 이십 분 남짓 되는 길을 다녀와도 '몹시 새로운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