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삶창
아이들이 춤추며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웃고 춤추면서 노래합니다. 아이들만 춤을 추라 할 수 없고, 아이들끼리만 노래하라 할 수 없습니다. 어버이는 언제나 아이하고 함께 놀고 함께 일하며 함께 밥을 먹습니다. 함께 호미질을 하고 함께 씨앗을 심으며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밥을 끓이고 달걀을 삶습니다. 내가 짓는 밥은 내 손길이 깃드는 밥입니다. 내 손길은 따스할 수 있고, 그야말로 따스할 수 있으며,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웃는 소리를 내 가슴속에 알뜰히 담은 뒤, 이 기쁜 웃음을 씨앗으로 삼아서 새롭게 따스한 손길로 가다듬어 밥을 지을 수 있어요.
을지로 지하도에 집을 짓자 박스 위에 지붕을 세우고 구멍 뚫어 창도 만들자 창문에 모기장도 붙이자 박스 옆에 기역 자로 튀어나온 별채도 이어야지 비닐을 붙이면 빨래가 휘날리는 집 페트병에 더운 물 담아 애인처럼 안고 자자 (이승)김해자님 시집 <집에 가자>(삶창, 2015)를 읽습니다. 시집 이름이 "집에 가자"라니, 이 얼마나 구수하면서 맛깔스럽고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더러, "자, 우리 집에 가자"하고 건네는 말은 얼마나 따스하면서 기쁘고 고마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갈 곳을 몰라 떠도는 사람더러, "자, 이제 집에 가요"하고 들려주는 말은 얼마나 상냥하면서 착하고 고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젠 돌아가고 말아야지, / 치렁처렁 목걸이와 제복과 억지웃음 벗어던지고 / 날카로운 하이힐 대신 청동거울을! / 계산기 대신 둥둥 북소리 같은 심장을! / 문서 대신 비와 구름이 머무는 밭을! (웅녀의 시간)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아이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시험 성적에 목이 매이다가 참말로 목이 매여서 목숨을 빼앗긴 아이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애써서 대학교에도 갔지만, 힘써서 공무원이나 회사원도 되었지만, 도무지 앞날이 환하게 보이지 않아서 눈물에 젖다가 밑바닥으로 고꾸라진 젊은이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핵발전소와 송전탑에 고향마을을 빼앗긴 할매와 할배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큰도시에 수돗물을 댄다며 댐을 지어야 해서 고향마을을 떠나라고 하니 앞으로 어디로도 갈 곳이 없는 시골 할매와 할배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일요일 없이 밤새 일하고도 라면 한 그릇 겨우 끓여먹는 공순이와 공돌이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따뜻한 어버이 품에 안기고 싶고, 포근한 이부자리에 눕고 싶고, 맑은 새소리와 싱그러운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이제는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사랑을 꿈꾸면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