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말 '삼시세끼'와 일본말 '잉꼬부부'

[우리말 살려쓰기] '삐까번쩍', '대담이 있다', '많은 관심' 가다듬기

등록 2015.08.21 15:52수정 2015.08.2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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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잉꼬/잉꼬부부

아주 사이가 좋은 부부를 두고 '잉꼬부부' 같은 말을 흔히 씁니다.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잉꼬'라는 새 이름은 일본말 'inko(鸚哥)'에서 왔다고 하면서 '원앙부부'로 고쳐서 쓰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예부터 '사랑새'가 있습니다. 서양에서 '펠리컨(pelican)'이라고 일컫는 새를 두고도, 한국에서는 예부터 '사다새'라 했어요. 한국에 없는 새라면 이름이 따로 없을 테지만, 한국에 있는 새이기에 예부터 한국말로 곱게 지어서 가리키는 이름이 있어요.


아주 사이가 좋은 부부라면 한국말로는 '사랑새 부부'처럼 쓰면 됩니다. 굳이 새를 빗대지 않아도 될 테니 '사랑부부'처럼 써도 잘 어울려요. 부부가 아닌 둘 사이가 아주 좋거나 서로 살뜰히 아끼는 사이라고 하면 '사랑동무'나 '사랑벗'이나 '사랑님'처럼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찰떡동무·찰떡님·찰떡부부'라든지 '깨소금동무·깨소금님·깨소금부부' 같은 이름을 새롭게 써 볼 만합니다. 또는 '한마음동무·한마음님·한마음부부'라든지 '한사랑동무·한사랑님·한사랑부부' 같은 이름을 지어 볼 만해요.

아빠와 엄마는 '잉꼬 부부'였잖니
→ 아빠와 엄마는 '사랑새 부부'였잖니
→ 아빠와 엄마는 '한사랑부부'였잖니
→ 아빠와 엄마는 '한마음부부'였잖니
<서갑숙-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중앙엠엔비,1999) 276쪽

수탉이 암탉과 잉꼬부부처럼 잘 다니다
→ 수탉이 암탉과 사랑부부처럼 잘 다니다
→ 수탉이 암탉과 깨소금부부처럼 잘 다니다
→ 수탉이 암탉과 찰떡부부처럼 잘 다니다
<강수돌-더불어 교육혁명>(삼인,2015) 183쪽

ㄴ. 삐까번쩍/삐까삐까

 삐까번쩍하게 마루를 닦았다
번쩍번쩍하게 마루를 닦았다
번쩍거리도록 마루를 닦았다
 네 자전거가 삐까삐까하구나
→ 네 자전거가 번쩍번쩍하구나
→ 네 자전거가 번쩍거리는구나


'삐까삐까(ぴかぴか)'는 일본말입니다. 한국말로는 '번쩍번쩍'입니다. 일본 만화 가운데 한국에 널리 알려진 '피카츄(ピカチュウ)'에서 '피카'는 '삐까'하고 같은 일본말이고, 이 '피카츄'라는 이름은 한국말로 옮기면 '번쩍돌이'나 '번쩍이'입니다. 또는 '번개돌이'라 할 수 있어요.

일제강점기 언저리부터 스며든 숱한 일본말 가운데 '삐까'는 한국말 '번쩍'하고 만나서 '삐까번쩍'처럼 쓰이기도 하는데, '번쩍번쩍'처럼 손질하면 됩니다. 흐름을 살펴서 '반짝반짝'으로 쓸 수 있고, '반들반들'이라든지 '번들번들'이라든지 '번드르르'라든지 '반드르르'로 쓸 수 있어요.


마루를 닦는다면 "환하게 빛나도록 마루를 닦았다"처럼 써도 잘 어울립니다. 새로 마련한 자전거가 번쩍거린다면 "네 자전거가 눈부시구나"라든지 "네 자전거가 아주 빛나는구나"처럼 쓸 만해요.

도시에는 삐까번쩍한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 도시에는 번쩍번쩍한 건물들이 가득합니다
→ 도시에는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넘칩니다
→ 도시에는 번쩍거리는 건물들이 빽빽합니다
<정부희-곤충들의 수다>(상상의숲,2015) 175쪽

ㄷ. 대담이 있었다

 그 사람과의 접촉은 얼마 앞서 있었다
→ 그 사람과 얼마 앞서 만났다
 교류는 최근에 있었다
→ 교류는 최근에 했다
→ 교류는 요즈음에 했다

한국말에서는 '있다'라는 낱말을 무척 자주 씁니다. 다만, 무척 자주 쓰기는 하되 아무 곳에나 쓰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접촉이 있었다"라든지 "교류가 있었다"처럼 쓰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접촉'이나 '교류'는 '하다'라는 낱말로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과의 접촉은 얼마 앞서 있었다" 같은 글월에서 한자말 '접촉'은 한국말 '만남'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글월에서 '만남'으로 고쳐서 다시 살피면 "그 사람과 만남은 얼마 앞서 있었다" 꼴이 되는데, 겉보기로는 한글이어도 알맹이로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만남은 있었다"나 "만남이 있었다" 같은 말은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만났다"처럼 적어야 비로소 한국말입니다. 한자말 '접촉'을 꼭 쓰고 싶다면 "그 사람과 얼마 앞서 접촉했다"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대담은 2014년 초에 있었다" 같은 말마디는 얼핏 보기에는 딱히 말썽이 없다고 여길 수 있으나, '대담(對談)'은 '이야기'를 가리켜요. 이야기는 '하다'나 '나누다'로 가리킵니다.

대담은 2014년 초에 있었다
→ 대담은 2014년 초에 했다
→ 이야기는 2014년 첫머리에 했다
→ 2014년 첫무렵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쟁없는 세상-저항하는 평화>(오월의봄,2015) 106쪽

ㄹ. 많은 관심 (많은 무엇)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관심 보이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크게 써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관심과 뜨거운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지켜보고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이 지켜보고 뜨겁게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관심(關心)'은 "마음을 기울임"을 뜻합니다. 관용구로 곧잘 쓰는 "많은 관심"은 "마음을 많이 기울임"을 가리킨다고 할 만합니다. "관심을 기울이다"처럼 쓰면 겹말이에요. "마음을 기울이다"라고만 써야 올바릅니다. 그리고, "관심을 모으다"나 "관심을 가지다"나 "관심이 쏠리다"처럼 쓰는 말마디도 알맞지 않습니다. '관심'은 "마음을 기울임"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눈길을 모으다"나 "눈길을 두다"나 "눈길이 쏠리다"처럼 바로잡아야 알맞아요.

"많은 무엇" 꼴로 쓰는 말마디는 얄궂습니다. "많은 찬성이 있다"나 "많은 동의가 있다"나 "많은 소원이 있다"처럼 말할 수 없어요. "찬성이 많다"나 "많이 동의한다"나 "소원이 많다"처럼 말해야 올발라요.

"많은 마음을 기울이다"가 아닌 "마음을 많이 기울이다"여야 알맞고, "많은 눈길을 기울이다"가 아닌 "눈길을 많이 기울이다"여야 알맞아요.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처럼 말하는 분이 자꾸 늘어나는데, "관심을 많이 보이시기 바랍니다"나 "널리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로 손질합니다. "많은 사랑을 받다"가 아니라 "사랑을 많이 받다"입니다.

학계에서는 많은 이견이 있을 것이다
→ 학계에서는 이견이 많으리라 본다
<정광-한글의 발명>(김영사,2015) 486쪽

ㅁ. 삼시 세끼

 삼시 세끼를 먹기 힘들다
세끼를 먹기 힘들다
세 끼니를 먹기 힘들다
하루 세 끼를 먹기 힘들다

'삼시(三時)'라는 한자말은 "아침, 점심, 저녁의 세 끼니"를 뜻하고, '세끼'라는 한국말은 "아침·점심·저녁으로 하루에 세 번 먹는 밥"을 뜻합니다. 두 낱말은 뜻이나 쓰임새가 같습니다. 그러니 '삼시 세끼'처럼 나란히 쓴다면 겹말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삼시 세끼' 같은 겹말을 쓰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겹말인 줄 모르고 그냥 따릅니다. 거꾸로 보면, 사람들이 겹말인 줄 못 느끼며 잘못 쓰기에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이 말을 쓴다고 할 만합니다.

'세끼'는 "하루에 세 번 먹는 밥"을 뜻하는 낱말로 한국말사전에 오르는데, "하루에 한 번 먹는 밥"이나 "하루에 두 번 먹는 밥"을 가리킬 '한끼'나 '두끼'는 아직 한국말사전에 못 오릅니다. 그러나 '일식(一食)'이나 '이식(二食)' 같은 한자말은 한국말사전에 오릅니다. 아무래도 국어학자부터 한국말을 안 사랑하는구나 싶습니다.

'세끼'는 "하루에 세 번 먹는 밥"을 가리키니 붙여서 씁니다. "하루 세 끼(끼니)"처럼 쓸 적에는 '하루'를 앞에 넣으니 띄어서 씁니다. 하루에 네 끼니를 먹는다면 "하루 네 끼"나 '네끼'처럼 쓸 수 있습니다. '다섯끼'나 '여섯끼'처럼 쓸 수도 있어요.

옆 사람의 며느리는 삼시 세끼를 가져다 날랐습니다
→ 옆 사람 며느리는 세끼를 가져다 날랐습니다
→ 옆 사람 며느리는 날마다 세끼를 가져다 날랐습니다
<사노 요코/이지수 옮김-사는 게 뭐라고>(마음산책,2015) 91쪽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우리말 살려쓰기 #한국말 #말넋 #글쓰기 #우리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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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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