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일하기> 표지.
슬로비
사회운동의 분열과 침체 속에서 기존 리더십을 비판하며 세대 교체를 역설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이것은 다분히 '책임론'일 뿐, 리더십의 선순환이나 세대 전환의 기획을 담고 있지는 못했다.
미국의 비영리 활동가인 프랜시스 쿤로이더, 헬렌 선희 김, 로비 로드리게스가 공동 집필한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일하기>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비영리 조직의 리더십 전환에 관한 이야기다. 비영리 조직이 리더십 전환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을 조명하고 세대 간 리더십 전환에 대한 폭넓고 체계적인 논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를 위해 미국 내 수 많은 비영리 조직과 활동가는 관찰, 인터뷰했고 리더십 세대 전환을 위한 해법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사례가 주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우리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한국의 비영리 활동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줄 것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진단한다.
사회 변화 조직이 맞닥뜨린 리더십 전환이라는 문제는 조직이 크나 작으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소규모 단체일수록 확실히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가고 기금 마련에 대한 압박이 늘 따라다니기 때문일까? 이 문제를 고민할 시간조차 없어 보였다. 이런 조직은 근무 시간이 길고 임금은 적은데다, 개인의 삶을 모조리 일에 바칠 의지가 있는 리더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형편... (19쪽)
그러나 새 리더는 기존 리더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기를 원할 것이다. 때문에 저자들은 "이런 현실로 보건대 리더십의 세대 전환에 대비하지 않는 비영리단체는 변화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19쪽)고 경고한다.
비영리 영역의 리더십 세대 전환을 두고 이런저런 논의가 계속 이어지는데, 문제의 핵심이 뭘까? 베이비붐 세대가 떠난다는 건가, 리더 자리가 너무 힘들다는 건가, 기존 리더가 은퇴하면 그 자리를 맡을 새로운 리더가 없다는 건가, 기존 리더들이 젊은 리더의 능력을 기용하지 않는다는 건가? (40쪽)풀어야 할 과제가 꼭 하나만은 아니다. 문제가 복합적인 만큼 해법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새로운 도전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리더십 세대 전환의 필요성과 조건을 검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출하며 현실에 적합한 대안을 찾아가려는 비영리 조직 내부의 활발한 소통이 필요하다. 개인적, 조직적, 구조적 해법을 찾기 위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보라는 것, 이 책이 주문하고 있는 전환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의 성공담, 개인적 변화, 변화의 증거에 대한 이야기에 흥미를 갖는 한편, 그럴수록 더욱더 '진짜 속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왜 어떤 단체는 여러 단체들과 함께 활동하기를 거부하며 실패한 전략은 무엇인지, 무엇보다도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세상을 바꾸려던 기성 세대의 발걸음에 균열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 시대가 얼마나 위대했는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진 미심쩍은 일에 관하여 답하기 거리는 기성 세대의 모습에 젊은 세대는 혼란을 느낀다. 그동안 젊은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가 이룬 성취가 무엇인지 듣고 배워 왔다. 이제는 잘못된 것을 파악하여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려고 한다. (88쪽)세대 간 소통으로 함께 만드는 리더십비영리 영역 안에서 서로 다른 세대를 결속하는 요소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념과 가치다.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은 세대 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책에서는 가치의 중요한 세 가지 요소로 비전, 신뢰, 인식을 꼽는다. 세 가지는 상호 보완적이다. 가치는 좌절, 오해, 차이를 극복하고 지탱해 나갈 수 있도록 내면의 열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비전, 인식, 신뢰는 각자 다른 가치를 지지하고 성장케한다.
'비전'은 때로 반대에 부딪치더라도 모두가 더 큰 목표를 놓치지 않도록 일깨워 주는 조직 차원의 접착제다. 비전은 단체와 활동가를 서로 연결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미래를 구상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인식'은 또래 집단에서 이해를 공유하고 같은 사안이나 문제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분석하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저자들은 비영리 영역에서의 '인식'이란 "겉으로는 변화를 이룬 것 같아도 막상 안으로는 계속되는 불평등이나 불공평, 지속 가능성이 희미한 상황을 꿰뚫어보는 것"(108쪽)이라고 말한다. 인식의 과정을 통해 사회 활동의 진정한 이유와 필연성을 깊이 찾아갈 수 있고, 그만큼 공통의 목표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신뢰'는 세대 간에 생기는 의견 충돌의 과정에서 서로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신뢰란 '누군가의 성실, 진실, 능력, 강인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경험을 공유하고 고유의 역사와 관점을 나누며 서로에게 배울 방법을 찾아 나갈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비전, 신뢰, 인식의 역할을 이해하는 가치의 틀은 세대 간 연속성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선배 세대의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고 젊은 세대로부터 현실과 미래에 대한 시각을 배워야 한다. 이처럼 비영리 영역에서 세대를 뛰어넘어 조화롭게 일하려면, 우선 생애 주기를 통해 맞이하는 각자의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차원을 뛰어넘어 권한, 관계, 리더십을 형성하는 문제에 대해 서로 배우고 귀 기울이는 과정을 구조화하고 제도화해야 한다. (109쪽)리더십 세대 전환, 고정 관념에 도전하라다음 세대 리더가 일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평생에 걸쳐 사회 변화 활동에 헌신하기 위해서는 영적 회복과 자기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젊은 세대가 비영리 영역의 일을 꾸준히 해 나가게 하려면 그들 개개인의 행복 지수를 높여야 한다. 비영리 영역의 일들은 변화에 대한 갈망과 열정에 의해 시작되지만 이러한 동기만으로 지속하기는 어렵다.
비영리 영역이 점점 더 전문화되어 왔지만, 실무자와 리더가 함께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재충전하는 방법은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저 잘 싸우고 좋은 성과를 거두면 그 자체가 보상이라 생각했고 그럴수록 생산성에 대한 압박은 점점 커졌다.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시대에는, 체계적인 지원이 뒤따르지 않으면 리더와 실무자 모두 쉽게 지칠 수 밖에 없다. (180쪽)저자들은 비영리 리더십의 성공적인 세대 전환을 대비하려면 리더십과 조직 형태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도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비영리 조직의 저임금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급여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업무에 대한 보상'이라는 주제를 공식적으로 다루고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비영리 조직의 보상 체계 안에서 생활하고 리더를 맡고 은퇴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재무 정보를 공유하고 비영리 조직을 떠나거나 남도록 유인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전체 비영리 영역 차원에서 비용 절감 방안을 찾아낼 수도 있다. 또한 비영리 영역에 진입하는 이들의 재정적 부담을 줄여 줄 학자금 대출 해소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미국의 '비영리실무자연대'는 대학 졸업생들의 비영리 단체 영입을 위해 학생 대출 공동 탕감 프로그램을 제안(184쪽)하기도 했다. 의사 결정에서 권한을 분산하는 공유 리더십, 다세대 리더십 등 조직을 이끄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제도화하는 시도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젊은 리더가 현장을 떠나지 않고 기존의 리더에게 과중하게 몰려 있는 업무도 분산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은 리더들이 개별 조직을 넘어서 비영리 영역에 필요한 장기적 변화가 무엇인지 새롭게 사고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세대 전환'은 '세대 교체'와는 다른 뉘앙스를 가진다. 단순히 리더 한 명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리더십의 선순환이라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비영리 조직이 작동하는 구조와 운영 방식에 대한 현재의 고정 관념을 검토하고 변화의 요구에 걸맞은 구조를 찾아내야 한다.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일하기 - 비영리 리더십의 미래, 제대로 준비하다
프랜시스 쿤로이더 & 헬렌 선희 김 & 로비 로드리게스 지음, 장상미 옮김, 진저티프로젝트,
슬로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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