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부부 아기에게 입힐 돌잔치 한복.
조호진
"분윳값이 없어서.." 마트서 분유통 훔친 20대女"백일 딸 분유 때문에" 택시 턴 철부지 10대 아빠"아기 분윳값 때문에.." 20대 알바 편의점 돈 훔쳐
조카 분윳값이 떨어졌다는 민철이의 말을 들으면서 안타까운 뉴스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마트에서 분유 두 통을 훔친 20대 엄마, 백일 된 딸의 분윳값을 마련하기 위해 택시를 턴 철부지 10대 아빠, 아기 분윳값 등의 생활비와 월세 때문에 편의점 현금을 훔친 20대 알바…. 이런 뉴스를 접할 때면 주변에선 돕지 않고 무엇을 했냐고, 무정한 세상이라고 성토했는데 제가 그 상황에 처해졌습니다.
분유를 사주러 가기로 했는데 폭설이 쏟아지면서 도심이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눈길이 위험하니 내일 가라고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분윳값이 떨어졌다는 소리에 마음이 급했습니다. 설설 기면서 경부고속도로를 탔습니다. 아내는 손 모아 기도했습니다. 차비만 떨어질 것이지, 분윳값이 떨어지면 어떡하라고…. 폭설의 밤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니 밤 9시쯤 됐습니다.
민철이 옆에는 앳된 엄마가 서 있었습니다. 민철이 누나 숙희입니다. 엄마도 아기도 작고 여렸습니다. 돌이 다 돼 가는 아기 솜이를 안았는데 새처럼 가벼웠습니다. 숙희의 연하 동거남 수철(21)이 또한 보육원 출신으로 소년원에도 갔다 왔습니다. 수철이는 PC방과 편의점 등에서 알바하다 잘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분유뿐 아니라 쌀도 계란도 다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저녁을 못 먹은 남매에게 고기를 사 먹인 뒤에 분유와 쌀과 과일 등을 사가지고 집에 갔습니다. 정부가 소년소녀가장에게 얻어준 전셋집인데 자취방 같았습니다.
고아부부의 자취방 같은 신혼 방에 들어섰습니다.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라고, 천애고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거를 하고, 어린 아내는 밥상을 차리고, 아기를 키우고, 어린 가장은 알바에 나섰다가 잘리고, 처자식을 지키기 위해 다시 일터를 찾는 고아부부의 가난한 단칸방에서 사랑노래가 떠올랐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 중 일부)저녁을 든든히 채운 데다 당분간은 분유와 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서인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숙희가 아내에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설에 집에 가도 돼요?"구정에 저희 집에 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명절이 돼도 찾아갈 친정도 시댁도 없으니 쓸쓸한 것입니다. 아내가 설을 같이 쇠자고 말하자 숙희는 슬그머니 웃었습니다. 숙희에게 얼마의 돈을 주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연락하라!"는 말을 남긴 채 밤길을 달렸습니다. 살갑게 안기던 솜이의 체온과 눈웃음이 밤길 운전의 피곤함을 덜어준 덕분에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고아남매-보호소년과 함께한 명절... 설이 설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