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오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일본의 전후 70년에 관한 역사인식을 반영한 담화(일명 아베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중국,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전후 70주년 '아베 담화'가 각의 결정을 거쳐서 8월 14일 오후 6시에 발표되었다. 애시 당초 아베 담화의 내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아베총리의 지금까지 우익적인 언동을 볼 때 주변국의 의구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은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계승을 요구하면서, 아베 담화가 한일관계 개선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중국은 아베 담화에 분명한 사죄를 촉구하였다. 일본 지식인과 시민단체, 보수 언론까지 나서서 침략과 사죄 문구를 추가하라고 하였다. 나카소네 전 수상은 일본의 전쟁범죄 기억이 100년은 간다면서 사죄를 조언하였다. 연립여당으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공명당도 침략과 사죄라는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며 압박하였다.
무라야마 담화보다 후퇴한 아베 담화그러나 아베 담화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하는 실망스런 것이었다. 사죄의 진정성이 거의 엿보이지 않았다. 아베 본인이 직접 침략과 식민통치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할지가 관심사였지만, 역대 내각의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전체적으로 무라야마, 고노 담화를 승계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반성과 사죄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1995년 8월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각국에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되어 있다.
무라야마 담화 내용은 1998년10월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 1998년11월 장쩌민-오부치 중일 공동 선언에서 인용되었다.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은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가 되어 갔다. 후쿠다 내각, 아소 내각도 무라야마 담화를 수용하였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의 담화를 존중한다는 것으로 정리해 버렸다. 본인의 직접적인 사죄 표현으로 1984년 쇼와 일왕이 전두환 대통령과 만찬사에서 내놓았던 '통석(痛惜)의 염(念)'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그저 애끓는 심정이라는 것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명시되지 않고, 아시아인보다 자국민의 손해와 고통을 우선시하였다. 1995년 아시아 각국과 일본 국민에 사죄하였던 무라야마 담화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일본 극우파와 동일한 아베의 역사관
아베 담화의 실망스런 수준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아베 총리는 담화 작성을 위해 '21세기 구상 간담회'를 설치하였다. 8월 6일 나온 최종 보고서는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중국 침략, 조선과 타이완에서의 식민통치를 적고 있다. 보고서는 전쟁을 침략으로 규정했지만, 국제법상 침략 정의가 다르다는 주석도 달아 놓았다. 1930년 식민지배가 가혹했지만, 조선은 1920년대 경제성장을 맛보았다고 강변한다. 당시 서구 열강이 야만, 미개지역을 문명화하고자 식민지로 삼은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적고 있다.
아베 담화는 19세기말 서세동점 시대에 일본은 독립을 지켜냈으며, 러일전쟁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왜곡하고 있다. 우익그룹 새역모(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역사관과 정확히 일치한다.
러일전쟁은 조선에게 식민지배로 인한 엄청난 고통이 시작된 사건이었다. 일본군 수송을 위해 부랴부랴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수많은 조선농민들이 강제 동원되고 토지를 강탈당했다. 이에 저항하는 의병들은 대량 학살되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민간인 학살의 원형으로 기록될 정도이다.
러일전쟁 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져 조선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 시마네현이 일방적으로 독도를 편입시켜 영유권 분쟁의 씨를 뿌렸다. 한반도를 획득한 일본은 중국, 동남아로 진출하면서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며, 결국 원폭을 맞고 패망하였다. 러일전쟁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준 것이 아니고, 아시아와 일본 국민에게 살상과 고통을 유발한 죄악의 뿌리였을 따름이다.
아베 총리의 한국 무시는 노골적이다. 담화에서 '전쟁의 온갖 고통을 겪은 중국인', 미군 을 지칭하는 '포로'의 고통을 언급하면서 한국은 빠져 있다.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도 없다. 그저 식민지배와 영원히 결별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도 아시아 각국을 식민지화했고 일본도 그랬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그런데 이제 식민지배는 안 된다'는 식으로 해석되기 십상이다. 불법점거와 식민통치 과정에서 벌어진 약 7천 명의 3.1 운동 참가자 학살,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창씨개명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고통과 피해에 대해 명백하고 직접적인 사죄는 없었다.
20세기 전시하 여성의 존엄과 명예가 손상되었다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바로 곧 21세기 여성인권을 지키기 위해 세계를 주도하겠다고 강변하였다.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마저 부정하고, 국가책임과 전후보상도 하지 않으면서 궤변을 늘어놓은 셈이다.
제대로 된 반성도 없으니, 사죄도 기대하기 어렵다. 반성과 사죄는 본인 내지 국가의 정서를 표현한다. 국어사전에 있는 반성(反省) 개념은 과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이다. 난징대학살이나 3.1운동 양민학살, 강제징용, 위안부 피해의 역사를 되돌이킬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반성은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한 후회, 회한이 담겨 있다. 영어로 'remorse', 'reflection'에 해당한다.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자신과의 대화이자 타자를 향한 발신이다. 반성은 재발 방지가 중요하며, 미래 지향적이다. 사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존재한다. 가해자로서 일본이 피해자인 한국, 중국에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래서 반성에는 반드시 사죄가 따라야 한다. 하나의 담화 속에 두 개 용어가 동시에 들어가야 한다.
사죄는 보상을 포함하고 있다. 보상은 사죄를 물질적 차원에서 분명히 드러내는 행위이다. 전후보상은 1965년 청구권협정에서 다루지 않았던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물적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을 포함한다. 한일 간 미해결된 쟁점 사항들이다.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 정부, 미쓰비시 중공업, 산케이 신문을 상대로 미국의 재판소에 전후보상을 요구하는 국제소송을 제기하였다. 지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노역 해석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전후보상 소송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베 총리와 일본 외무성이 진정성이 담긴 사죄 표현을 꺼린 이유를 알 수 있다.
아베의 자화자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