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학 작가. 작업실에서작업하는 모습
박영학
세밀하고 실수가 거의 없다. 크게 웃지도 몇 번 웃지도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고뇌하며 자신의 것을 찾은 화가가 갖는 여유로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손끝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모든 색을 빼고 흑과 백으로만 풍경을 담는다. 멀리서 보면 수묵화같고 다시 보면 판화같다. '케테 콜비츠'의 판화와 같이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흑과 백' 속엔 케테 콜비츠의 작품에 없는 자연의 컬러가 담겨 있다.
그는 소나무를 직접 구워 만든 숯(목탄)으로 그린다. 숯이 인간이 불을 발견한 때부터 사용했다면 약 5000~6000년 전부터 사용했던 재료이다. 자연의 일부인 나무토막이 불(火)과 씨름한 시간은 기대감으로 더 뜨겁게 달구어 진다. 일상에서 나무토막이 '숯'이 되는 찰나이다. 정화에 정화를 거쳐 가장 원시적인 재료 '숯'은 이렇게 탄생한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아직 불완전하다. 작가의 손끝에서 느낌있는 재료가 되는 순간, 비로소 자연의 풍경을 완전하게 표현하게 된다.
숯조각을 여러 번 붙여 만든 밤하늘에는 먹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맑음이 있다.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인 숯, 그 다양한 입면체가 빛에 반응했기에 가능한 것 같다. 먹으로만 흑(黑)을 표현했다면 답답하고 지루하고 무거웠을 것이다.
장르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먹이 아니고 붓이 아닌 숯덩이여서가 아니다. 화선지가 아닌 돌가루 방해말을 12번 이상 덧입힌 장지(壯紙)라서가 아니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가 먹과 화선지를 떠나서 산수(山水)를 표현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재료와 기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여전히 여백의 미와 사유의 철학으로 꽃을 피운 것은, 바로 내밀하고 성실한 일상에서 오랜 고뇌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힘들고 어려운 재료를 선택해서 얻는 게 있다면, 일상에서 작품에 몰입할 때에 주어지는 '애착'과 풍경 너머에 있는 '설렘'이다. 가까이도 보이고 멀리 있는 것도 보인다. 목적을 향한 일상의 성실함과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기대감은 오롯이 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