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이 주장하는 구효정 씨 사망의 인과관계
구효정씨 유가족
구효정(당시 27세)씨는 지난 2013년 6월 19일 공황장애 등을 치료받기 위해 가족과 함께 남양주 지역의 한 병원을 찾았다. 해당 병원은 신경정신과를 포함한 다섯 가지의 진료과목, 그리고 병상 수 142개를 갖추고 있었다. 구씨는 의사의 권유대로 입원해 약물 치료를 받기로 했고 입원 후 40일가량 병원에 머물렀다. 그리고 곧 퇴원을 앞둔 7월 말 사건이 발생했다.
구씨는 그해 7월 26일 자정 갑자기 가슴의 답답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해요. 공황장애가 온 것처럼요. 주사 맞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복도로 나와 입원 병동의 간호사에게 무언가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자리를 비운 당직 의사를 부르지 않았고 보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누우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뿐이었다.
구씨는 간호사의 말을 따랐지만, 여전히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방을 옮겨도 마찬가지였다. 구씨가 쓰러진 후 20분 동안 아무런 의료적 조치가 없었고, 병원에 있어야 할 당직 의사는 계속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뒤늦게 연락한 119구급대가 당직 의사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했고 20분에 걸쳐 타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지만 구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원은 구효정씨의 사망 시각을 약 오전 3시 30분으로 추정한다.
구씨의 유가족은 당시 의사가 당직을 서지 않고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집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병원 측은 개인 정보라 공개할 수 없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17일 기자가 병원 측에 해당 사실에 관해 문의했지만 "유가족이 아니면 답변을 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이에 유가족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병원 측은 "개인 정보라 알려드릴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구효정씨의 유가족은 사고 직후 형사 고소를 통해 당직 의사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경찰 측에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2013년 말부터 민사 소송을 통해 한 가지씩 사실을 밝혀내려고 했지만, 당직 의사와 간호사 등 당사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 지난 5월 말 있었던 공판에서도 상황은 막막했다.
심폐소생술만 제때 이뤄졌더라면이 사건에 대한 해당 병원 측의 주장은 일관적이었다. 병원은 매뉴얼에 따라 제대로 대처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환자가 사망에 이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를 살펴보면 환자가 자정부터 호소해온 가슴 통증은 신경정신과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인해 흔히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즉 병원은 당시 간호사가 환자를 매뉴얼대로 격리실로 옮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조치를 전부 취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새벽 3시 3분경 환자가 갑자기 쓰러진 상황에서도 환자가 계속 토사물을 내뱉었기 때문에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시행할 수 없었고 그 다음 절차로 상급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119구급대에 이송 요청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가족이 문제 제기 하는 부분은 환자가 사망한 직전인 3시 30분이 다 돼서야 당직 의사가 현장에 도착했는데 앞서 환자에게 취해진 조치는 당직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모두 진행했다는 점이다. 또한 당직 의사에게 보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구씨의 유가족은 모든 진료 기록과 CCTV 영상을 첨부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대한의사협회에 의료 감정을 의뢰했다.
두 곳 모두 사인에 대한 감정 의견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인은 부정맥류의 급성심장사로 추정되며, 구씨가 평소 받아온 정신과 치료에서 약물이 과다하게 투여된 측면이 있고, 환자가 사망한 날 환자가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증상을 보였음에도 제대로 응급 처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공통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CCTV 영상 분석에는 "병원 관계자가 환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못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돼있다. 즉 그 상황에서 충분히 심폐소생술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구씨의 유가족은 "당시 딸에게 간호사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제대로 된 방법이라고 보기 힘든 어설픈 수준이었고, 심지어 그마저도 중간에 멈췄다. 심폐소생술이 쓰러진 5분 안에 시행되었으면 딸이 살아날 확률이 컸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권용진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장은 "신경정신과 환자 상당수는 약물로 치료를 받음에도 환자가 무언가 증상을 호소하면 내과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환자의 심리적인 불안 상태로 보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맨 처음 가슴에 답답함을 호소한 자정께 당직 의사에게 최초로 보고가 들어갔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망 사건의 법적 쟁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