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도 핵발전소도 군부대도, 게다가 대통령이나 판사나 대학교수나 학자가 없더라도, 누렇게 잘 익은 너른 들이 있으면, 누구나 즐겁게 밥 한 그릇을 나눕니다. 그러나, 누렇게 잘 익은 너른 들은 없으면서, 전기나 핵발전소나 군부대다 대통령만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최종규
전국의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난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흙과 물은 물론 생산에 사용된 연료까지 지역산인 농산물, 조리에 사용된 에너지까지 지역산인 식사는 더 큰 부가가치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꿈은 더욱 커져 간다. (135쪽)머니자본주의의 정도가 지나치면 인간이라는 존재까지도 돈으로 환산해 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됐다. 사람은 돈으로는 살 수 없다. 당신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도 형제도 살 수 없다 … 사람은 누군가에게 "당신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뿐이다. (159쪽)도시에서는 전기가 없으면 물을 못 마십니다. 먼먼 시골에 댐을 커다랗게 지어서 전기로 물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전기가 끊어지면 물이 바로 끊어집니다. 도시에서는 전기가 끊어지면 불을 못 켜는데, 햇빛이 스미지 않는 곳에 온갖 건물과 집과 가게가 많은 터라, 전기 없는 도시는 그야말로 '지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끊어진 도시에서는 자동차도 멈춥니다. 왜 자동차가 멈출까요? 기름집에서 기름을 자동차에 넣으려면 전기로 기계를 돌려야 하니, 전기가 끊어지면 자동차도 기름을 채우지 못해요. 전기가 끊어지는 도시는 아파트나 높은 건물에서 아주 끔찍할 테지요. 여름에는 시멘트 건물이 찜통이 될 테고, 겨울에는 쇠붙이 건물이 얼음구덩이가 될 테지요.
그야말로 도시는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시골에 커다랗게 지어서 우람한 송전탑을 잔뜩 박아서 잇는 얼거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그예 무너집니다. 도시는 시골을 짓밟는(착취하는) 얼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얼거리인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길'을 '학교에서 길들면서 배워'야 합니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남을 밟고 서야' 하니까요.
맑은 물과 깨끗한 바람이 흐르지 않는 도시에서 '살아남자'고 하니까, '돈을 악착같이 더 많이' 끌어모아서, '온갖 전기제품과 시설'을 갖추려고 합니다. 삶을 즐기려고 돈을 버는 도시가 아니라, 남을 밟고 올라서서 혼자 살아남자면서 악을 써야 하는 도시인 셈입니다.
소는 곡물은 전혀 먹지 않지만 젖이 나온다. 풀만 먹으니까 맛이 없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마셔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맛이 진하다 … 스하마 씨가 팔고 있는 우유는 시판가격의 5배나 된다. 하지만 팔리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건강한 환경 속에서 자연 그대로의 사료를 먹은 소에서 짠 우유는 누구라도 마시고 싶을 것이다. (198, 200쪽)숲에서 사는 사람이 튼튼하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살면서 이 대목을 날마다 새롭게 느낍니다. 숲에서 뛰놀면서 자라는 아이는 튼튼하고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이나 일본 모두 고작 스무 해나 서른 해 앞서까지만 해도 아주 많은 아이들이 시골에서 숲을 껴안으면서 튼튼하고 아름답게 자랐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고작 마흔 해나 쉰 해 앞서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아이들이 시골에서 숲을 노래하면서 튼튼하고 아름답게 자랐습니다.
오늘날 한국이나 일본은 거의 모든 아이들이 숲을 모르는 채 시름시름 앓으면서 과외와 학원에 시달립니다. 오늘날 한국이나 일본은 거의 모든 어른들이 숲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아이들한테 '숲 그림책'이나 '숲 동화책'이나 '숲 인문책'을 읽히기만 합니다.
숲을 숲으로 껴안지 않고 책으로 껴안을 수는 없습니다. 맑은 물은 코앞에 두고서 떠서 마셔야지, 맑은 물을 사진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깨끗한 바람은 온몸을 활짝 펴고서 마셔야지, 영화나 동영상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