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013년에 '731'이 새겨진 전투기에 탑승하며 사진을 찍어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731'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마루타 생체실험을 벌인 일제 관동군 산하 731 세균전 부대의 상징이다. '공부의 신' 강성태는 이를 두고, "독일 총리가 나치 친위대 유니폼을 입은 것"과 같다며 "총리라는 자가 731의 의미를 몰랐다면 바보를 넘어 무뇌"고 "알고도 이 짓을 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닌 악마"라고 평하기도 했다.
산케이신문
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과거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아들이나 손자,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도 사죄의 숙명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윤리적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관련기사:
'일본' 빠진 사죄와 반성... 아베 '꼼수 담화').
또한 그가 예상을 깨고 '침략', '식민지배', '사죄' 등의 핵심 단어를 조합한 담화를 내놓았지만, 구체적으로 일본이 어떤 사죄와 그에 응당한 행동을 표현했는지 명시하지 않았다. 또한 사죄의 표현과 행동을 "하겠다"가 아닌, "해왔다"는 식의 과거형 진술로 일관해 외교적으로 상당히 '교묘한' 담화가 됐다. 우선 아베 담화의 핵심문장 여섯가지를 뽑아 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 분석해보았다.
[1] "일본은 지난 전쟁에서의 행동에 대해 그동안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나타내왔다." ☞ 어떤 식으로 사죄를 표현했다는 것인지 구체적 내용이 없으며, 이 문장은 과거형일 뿐 현재 사죄하겠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2] "전후 70년을 맞아 전쟁으로 쓰러진 모든 사람들의 영혼 앞에서 깊이 고개를 숙이고 일본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 ☞ "전쟁으로 쓰러진 모든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일본 전범들까지 몽땅 포함하는 전칭 진술이다. 구체적 식민지배 피해 국가와 피해자들을 특칭하고 있지 않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강제 합사해놓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던 아베 총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3] "일본이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실과 고통을 안겨줬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 단순히 가슴이 아프다는 내용일 뿐 사죄에 대한 명시적 표현이 아니다. 단순 동정으로 비칠 수도 있다.
[4] "일본은 반성과 사죄의 뜻을 행동으로 옮겼다." ☞ 역시 일방적 주장일 뿐 구체적 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피해국가와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반박도 가능할 수 있다.
[5]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아시아 이웃인 한국, 중국, 대만 등의 국민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마음으로 새겼으며 이는 역대 내각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 ☞ 특칭 진술이긴 하지만 정확히 사죄를 언급하고 있진 않으며, 어떤 식으로 마음에 새겼다는 것인지 구체적 내용이 없다.
[6] "사변, 침략, 전쟁, 어떤 무력의 위협과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두 번 다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식민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 권리가 존중받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 '일본'이라는 책임소재를 명시하지 않은 공허한 문장이다.
아베의 진심, 이 문장에 있다
"이제 일본도 전후 태어난 세대가 전체 인구의 8할을 넘고 있다. 과거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아들이나 손자,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도 사죄의 숙명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앞에서 제시한 문장들을 다 차치해두더라도 이 문장 만큼은 놓치지 않길 권한다. 다른 문장들과 달리 주어(일본), 논거(전후세대가 8할), 주장(사죄의무 없음)을 다 갖추면서 아베의 진심이 가장 구체적이고 명확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장 뒤에 "그러나 우리 일본인은 세대를 넘어, 과거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와 "겸허한 마음으로 과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미래 세대에 넘겨줘야 할 책임이 있다"라는 문장이 덧붙었음을 밝힌다. 그렇지만 이 역시 사죄와는 무관하다.
결국 핵심은 전후세대는 사죄 의무가 없다는 주장이다. 신화통신, AP통신,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 역시 일제히 여기에 주목하면서 그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다. 외신들이 이 주장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말들이 꾸준히 있어왔기 때문이다.
가령 존 하워드 전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는 원주민들에 대한 공식 사죄를 거부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현 세대가 앞선 세대의 행위를 공식 사죄하고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미국의 흑인 노예제 배상을 둘러싼 미국 내 논쟁에서도, 헨리 하워드 전 공화당 의원은 "나는 한 번도 노예를 소유한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누구를 억압한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앞선 세대가 한 일을 내가 보상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전후세대는 책임없다? 문제는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