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6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EG테그 사옥 앞에서 최근 사내 왕따, 감시, 차별, 표적징계 등으로 목숨을 끊은 고 양우권 조합원이 발생 한것에 대한 규탄 및 재발 방지, 유가족 배상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희훈
"오전 9시, 또 저들만 회의실로 들어가서 회의를 한다. (중략) 왜 나는 배제하는가. 이것만 보더라도 나를 현장으로의 원직복직 시키지 않으려는 위장 인사명령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노조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이런 처우를 자행해도 된단 말인가.그리고 복직된 지가 벌써 두 달여가 되어 가는데 출입증도 발급해 주질 않는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진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땀이 난다. 머리가 아파 죽겠다. 힘들다. 너무. 오늘도 전날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내게 말을 하지 않는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완전 왕따다."
상생 기업? 살생 기업!금속노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EG테크 전 분회장 양우권. 그는 1998년 포스코의 사내하청업체인 EG테크에 입사해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산화철 폐기물 포장업무를 해 왔다. 2006년,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사측은 조합원들을 탈퇴시키기 위해 갖은 탄압을 했지만, 그는 노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감봉, 무기한 대기발령, 그리고 두 차례의 해고에도 그는 동료들이 모두 탈퇴한 노조를 버리지 않았다. 법원에서 부당해고 인정을 받자 사측은 그를 형식적으로 복직시켰지만, 그가 일하던 제철소 현장이 아니라 공장 밖 엔지니어 사무실로 배치하고 온종일, 1년 내내 CCTV의 감시와 조직된 왕따를 당하게 했다.
이러한 부당노동행위는 '원청'인 포스코의 영향을 받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포스코는 EG테크와 같은 '협력업체'를 핵심성과지표(KPI)를 통해 통제하는데 여기서 노사관계가 20%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면 곧 포스코와의 계약이 해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된다. 협력업체가 계약 해지를 당하지 않아도 조합원임이 드러난 노동자들은 사실상 해고를 당하기 일쑤이다.
위에서 인용한 고 양우권 전 분회장의 일기를 보면, 복직 명령을 받은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출입증을 발급해 주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실제 일을 하는 장소인 포스코 제철소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은 원청인 포스코가 발급한다. 출입증을 발급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곧 원청이 해당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배제하는 조치, 즉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다. 자동차, 조선, 철강 업종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 중 노조를 만든 이들은 예외 없이 출입증이 무효화되는 일을 당하곤 했다. 조합원의 현장 출입을 막는 것이다.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조를 지키려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자행되는 탄압과 회유는 원청의 관여 없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금속노조만 탈퇴하면 연봉을 1000만 원 이상 올려 주겠다", "노조만 탈퇴하면 포스코의 협력업체 사장을 시켜주겠다"는 회유가 거짓말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러한 원청의 행위는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이지만, 정부는 이들을 '우수기업'이라 표창하고 재정 지원을 해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포스코는 '상생협력 우수기업'이라며 각종 지원을 받아왔다. 포스코가 협력업체에 핵심성과지표를 강요하는 행위는 협력업체에 대한 '경영 컨설팅'으로,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직접 교육·훈련하는 행위는 '중소기업 훈련 지원'으로 포장됐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런 식으로 포스코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받은 액수가 약 34억 원에 달한다.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받는 재벌·대기업의 사내하도급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부터 대통령이 직접 주도하여 다양한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정책이 추진되었다. 2006년 3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2007년 9월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 공정거래협약 절차 및 지원 등에 관한 기준'이 제정되었다. 여기서는 동반성장을 위한 대기업의 지원사항으로 '자금지원'(운영자금, 기술개발자금 등), '인력·교육·훈련 지원'과 함께 '협력사의 경영과 관련된 직·간접적인 지원'을 포함하고 있다.
정부는 '상생협력 모범기업'에 대해 공공조달 시 우대조치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고용보험법', '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등에 근거하여 각종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국가인적자원개발컨소시엄 사업'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국가인적자원개발컨소시엄 사업은 대기업이나 사업주단체 등이 중소기업과 훈련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직업훈련을 시행하는 경우, 고용보험기금에서 시설·장비구매비, 인건비, 운영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 사업은 '대기업 등이 가진 우수한 직업훈련 인프라를 활용하여 중소기업 노동자의 직업훈련기회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2002년부터 시행됐으며, 2014년 현재 180개 컨소시엄에 2086억 원이 지원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이 사업은 대기업의 '협력업체' 노동자에 대한 직무교육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표 1>은 2014년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은수미 국회의원이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