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이 끄는 사인교에 올라앉아 행차하는 나주목사. 피상과 군기, 의장기, 관인, 병부, 교서, 유서에 이어 취타대, 기마군관, 나졸 뒤에 서 있다.
이돈삼
나주목문화관은 천년고도 목사고을을 설명해 주는 전시관이다. 나주목의 객사였던 금성관과 나주목사의 관사이면서 살림집이었던 목사내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 큰 고을에 뒀던, 지방행정 단위인 목에 대해서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각종 조형물과 사진, 그래픽 등을 이용해 전시를 해놓았다. 8개 주제관으로 이뤄져 있다.
당시 목사의 부임 행차 모습이나 하루 일정까지도 살펴볼 수 있다. 당시 나주목과 목사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나주목사의 행차 행렬은 밀랍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그 옆에 설명까지 붙여 놓았다. 이것을 하나하나 대입시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마디로 대단한 위용을 갖춘, 장관이었다.
행렬도 어마어마하다. 목사에게 귀중한 문서와 장부가 들어있는 가죽상자(皮箱)를 맨 앞에 세우고, 군기와 의장기가 뒤를 따른다. 목사의 관인, 목사가 군대를 동원할 때 쓰는 병부(兵符), 왕에게서 받은 교서(敎書), 관원에게 내리는 유서(諭書)가 그 뒤를 잇는다. 이어 취타대, 기마군관, 나졸이 따른다. 그 다음에 목사가 탄 가마(四人轎)가 배치되고, 사인교 뒤로 목사를 보좌하는 각종 관원들이 따르고 있다.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는 목사의 행차를 구경하는 것을 유일한 관광으로 여겼다고 한다. 목사가 지나가는 앞에서는 서민은 물론 여염집 여인들까지도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야 했다. 목사의 잦은 교체는 많은 민폐를 끼쳤다. 신임 목사에게 그 지방의 산물을 예물로 올려야 한 데다 관아나 내아의 단장과 수리, 영접에 수많은 인원이 동원됐으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