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때문에 못한다"더니... 속마음 들켜버린 강남구청장

[현장] 신연희 강남구청장 '공무원 동원' 사실상 인정, "잘못된 게 없다고 본다"

등록 2015.08.12 18:53수정 2015.08.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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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전 부지 개발 조감도
한전 부지 개발 조감도서울시 제공

"잘못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가 탈법적인 행정을 하는데 구청장이 가만있으란 말입니까?"

강남구 한전 부지 개발에서 발생하는 공공기여금을 다른 자치구에 쓰는 것을 반대하며, 소속 공무원들을 반대 서명운동에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던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공무원 동원을 사실상 인정했다.

"박원순 시장이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행위, 행정소송 내겠다"

신연희 구청장은 12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한전부지 개발 관련 기자설명회를 열었다. 올초 서울시가 국제교류복합지구를 인근 송파구 잠실운동장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한 뒤 서울시와 강남구 간 갈등이 증폭돼왔던지라 많은 기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논란의 핵은 한전 부지를 사들인 현대차그룹이 내놓는 공공기여금(1조7천억원 추정)이다. 서울시는 이 돈을 한전 부지는 물론 잠실운동장까지 사용하겠다는 입장이고, 강남구는 강남구에 우선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신 구청장은 이 자리에서 서울시가 지난 5월 21일자로 해당 지구단위계획을 고시하면서 재원조달방안, 경관계획, 전략환경영향평가 등을 빠뜨린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며 기존 언론에 알려졌던 것들과 함께 모두 7가지의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행위'에 대해 박원순 시장을 상대로 오는 20일까지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신 구청장은 "공공기여금은 기업이 뼈를 깎는 아픔으로 내는 돈이므로 세금보다 더 의미있게 사용해야 하며, 돈잔치의 대상이 아니다"며 "(박 시장이) 법치행정을 무시하고 여론몰이식 행정을 하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구청장-공직자는 구민 위해 모든 행정력 동원해야, 잘못된 게 없다"

문제의 발언은 기자설명회를 끝내고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에서 나왔다.


한 기자가 "서울시에 대해 '법치'를 강조하시는데, 강남구야말로 공무원들을 반대서명에 동원하는 등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자, "구청장이나 공직자는 구민을 위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 이 부분 잘못된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한 것. (지난봄 지구단위계획이 알려지자 강남구에서는 '범구민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반대 서명운동이 벌어졌는데, 이 와중에서 강남구 공무원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당시 강남구 측은 "주민들에게 서울시에 제출할 반대 의견서 작성을 권유한 것뿐이지 서명운동을 벌인 것은 아니다"고 발뺌한 바 있다.)

[관련기사] 강남구 "2조원 우리만 써야" 공무원 동원, 강제 서명운동

이에 <오마이뉴스> 기자가 "그럼 서명운동에 공무원들을 동원한 것을 인정하는 거냐"고 묻자 신 구청장은 "공무원을 동원해서 서명운동 벌인 게 아니고, 공무원들이 주민들께 서울시의 탈법적인 행정을 홍보한 것"이라고 답했다.

 12일 오전 서울시청 신청사 브리핑룸에서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현대차 부지 개발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12일 오전 서울시청 신청사 브리핑룸에서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현대차 부지 개발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신 구청장은 나아가 '구청장이 지시한 적은 없다는 말씀이냐"는 질문에는 "지금 서울시가 탈법적인 행정을 하는데 구청장이 가만있으란 말이냐. 지방자치법에 당연히 구청장의 의무사항이다"고 항변했다.

결국 신 구청장이 공무원을 동원한 반대 서명운동을 지시한 것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 됐다. 이로 인해 중립성이 요구되는 공무원들에게 구청이 본연의 직무와 관계없는 일을 부당하게 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법 때문에 못 해준다" → "공공기여금 해결되면 해 주겠다"

신 구청장은 또 강남구가 가지고 있는 한전 지하 변전소 이전·신축 허가권에 대해서도 말을 바꿔 논란을 빚었다. 이 변전소에 대한 인허가권은 서울시가 아닌 강남구가 쥐고 있는데, 강남구가 허가를 내지 않아 현대차그룹은 본관 신축공사의 첫 삽도 못 뜨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다.

기자들이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에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는 현대차그룹을 위해 변전소 신축허가를 내줄 용의는 없느냐'고 묻자 신 구청장은 "지난 2009년 서울시가 한전 부지를 특별지역으로 묶어놨기 때문에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되기 전에는 내주고 싶어도 내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세부계획이 확정되기 전에도 가능하다'는 서울시의 입장을 전하자 구청장은 "공공기여금은 강남지역의 교통, 환경, 낙후지역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것"이라며 "서울시와의 신뢰관계가 쌓이는 등 그 부분만 해결된다고 한다면 바로 (허가를) 내드릴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겉으로는 법 때문에 허가를 '못 내준다'고 말했지만, 결국 공공기여금 문제 때문에 허가를 '안 내주고' 있는 속을 들켜버린 셈이다.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신 구청장은 "그게 좀 그렇죠?"라고 머쓱해 하면서도 "원칙에는 안 맞지만 나라경제와 청소년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책임지고 빨리 허가를 내주겠다는 말씀"이라고 답했다.

서울시 "강남구, 구역지정과 계획결정을 혼동해 잘못된 주장"

이날 강남구가 제기한 서울시의 위법사례에 대해 서울시는 즉각 반박자료를 내고 "강남구는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과 '지구단위계획 결정'을 혼동하여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국토계획법에 따라 '지구단위계획구역을 확장하여 지정'하는 절차까지만 진행한 것으로,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포함하고 있는 지구단위계획은 현재 수립 중이다"며 "앞으로 계획을 결정할 때 재원조달방안 작성, 경관계획 수립, 전략환경영향평가 실시 등 관련법령에 따른 모든 법적 절차를 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특별시구청장협의회(회장 유덕열 동대문구청장)도 지난 10일에 이어 2차 성명을 내고 "한전부지 개발로 인한 공공기여금 사용처를 두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 유감을 표한다"며, "강남북 불균형 문제 해소를 위해 구청장협의회를 통해 보다 진솔하고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이어 "서울시에서 예정된 대규모 부지개발 사업들이 특정 지역만의 개발이 아니라 서울의 미래를 위한 도시개발이라면 그에 따른 이익 또한 서울시민 전체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무한경쟁의 논리가 아니라 더불어 잘 사는 공존과 공영의 가치로 우리 삶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고 주장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 #한전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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