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이거 한번 풀어봐."
"뭔데?"
"큰애 책에 있는 문제인데 어렵다."
공대 나와 대학원까지 마친 아빠가 못 푼 초등학교 2학년 수학문제라니. 그걸 또 나한테 한번 풀어보라니, 이 사람이 장난하나 싶었다. "자기가 모르는 걸 내가 알까?" 그래도 일단은 궁금하니까 문제부터 읽었다. '뭐냐. 단순한 풀이가 아니구나. 이러니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나오는 거야' 싶은 충격적인 지문. 아이도 아빠도 나도 한동안 말이 없길 십 여분. 시간이 지날수록 애 앞에서 슬슬 눈치도 보이고….
▲ 저 획 하나 때문에, 딸아이 앞에서 체면 구긴 아빠. ⓒ 최은경
'어떻게 성냥개비 한 개만 움직여서 이 숫자를 만들지? 안 되겠다. 답안을 보자.'
결과적으로 "우리가 못 푸는 게 아니었어"라고 나는 말하련다. 문제 풀이의 전제가 된 디지털 숫자표기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 위 지문에서 큰아이가 7의 디지털 숫자 표기가 7이 아니라, 획이 하나 더 있는 7이라고 생각했으니, 성냥개비 하나 옮겨서는 절대 풀리지 않았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입이 쭉 나와서 "수학은 너무 어려워, 어려워"를 연발하는 큰아이에게 우리가 디지털 숫자 7을 잘못 알고 있어 그랬다며 풀이 과정을 다시 설명해줬다. 아이 머릿속에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란 생각이 자랄까 봐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라니.
사실 수학은 나도 어려웠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수학과는 영 이별일 줄 알았는데, 대학 전공과목에서 '경영경제수학'을 발견했을 때의 그 충격이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밌어", "답을 풀었을 때의 그 짜릿함이 좋던데" 이런 이유로 수학이 재밌다고 하는 친구들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울타리를 넘은 양들, 누가 가장 쉽게 넘었을까?
▲ <울타리를 넘는 방법이 하나일까요?> (야엘 비란 지음 / 유지훈 옮김 / 책속물고기 펴냄 / 2015.05. / 1만 원) ⓒ 책속물고기
그림책 <울타리를 넘는 방법이 하나일까요?>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단순한 그림으로 재밌게 표현한 책이다. 정식으로 수학을 다룬 그림책은 아니지만,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기도 어려운 이유... 보면 안다.
호기심 많은 궁금이에게 궁금한 게 생겼어. 궁금이는 그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느라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지. 그러다 또 다른 고민이 생겼어. '어떻게 해야 잠을 잘 수 있을까'. 궁금이는 양을 세기로 했는데 이게 더 문제였어. 머릿속 양들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통에 제대로 셀 수가 없었거든.
결국, 궁금이는 울타리를 치기로 했어. 울타리를 넘는 양들을 하나씩 세면 되니까. 양들은 고민하기 시작했어. 어떻게 넘을까. 그러다 양 한 마리가 울타리 앞으로 나왔어. 그 후 계속 양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법을 찾아 울타리를 넘었지. 뛰어넘고, 부서뜨려 넘고, 기어서 넘고…. 이중 가장 머리가 좋은 양은 누구였을까? 가장 쉽게 울타리를 넘은 양은 누구지? 울타리를 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읽은 큰아이는 '양들은 다 생각이 달라서 울타리를 건널 때 다 다르게 건너갔다. 그중에서 울타리를 부수고 가는 양과 울타리를 밀고 가는 양이 제일 재밌었다. 또 울타리를 넘을 때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썼다.
기회를 놓칠세라 "수학도 그래, 문제를 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 꼭 어렵다고 생각할 것 없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각하는 게 참 재밌지 않니?"라는 내 말에 아이는 알 듯 말 듯한 표정. 그래도 만족하련다. "그래도 수학은 어려워"라고 대꾸하지 않은 게 어디냔 말이다.
ps. 책의 첫 장에서 저자 야엘 비란은 '나에게 울타리를 주신 아버지와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준 오빠에게'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이스라엘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은 영국 런던에 사는 그가 넘은 울타리는 과연 뭐였을까, 왜 어머니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았을까. 궁금함이 일었다. 물론 그것이 궁금해서 잠을 설친 끝에 결국 양을 세어 봤다는 그런 말은 전혀 아니다.
울타리를 넘는 방법이 하나일까요?
야엘 비란 글.그림, 유지훈 옮김,
책속물고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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