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드방스 수녀원의 소박한 성당에서. 제대 뒤에 수녀님들의 자리가 있다.
송주민
자기 인생을 누군가에게 통째로 내어맡긴다니, 그것도 '신을 의심하는 게' 만연한 시대에 말이야. 이토록 무책임한 삶의 자세가 있을 수 있을까. 신도 세계도 아닌 "오직 나 자신에게만 속한다"던 프랑스 땅의 철학자 사르트르(어제 마을을 둘러볼 때 그의 사진을 봤다)의 말에 전율하던 시절이, 묵직한 자의식을 거대한 실존으로, 그를 얻기 위해 발버둥 치던 때가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 나는 사르트르를 의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자아가 팽창할수록 집착과 불안은 커졌고 주위의 시선에 휘둘렸으며, 획득하려던 존재는 오히려 가냘픈 실낱처럼 가벼워졌다. 나 자신에게 속지 말아야 했다. 나를 지우고, 부수고, 깨어내고, 흩어버리고, 그리하여 비로소 나타난 변화들."(작년 겨울, 북한산을 오갈 때 쓴 메모 중)무릎을 꿇다, 자유롭다얼마간의 적막 속에서 문이 열린다. 주민이자 신자인듯한 중년 여인이 들어온다. 들어옴과 동시에 십자가가 매달린 제대를 바라보며 몸을 낮춘다. 곧이어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꿇는다. 그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조용히 걸어 자리에 와서 앉는다. 뒤에 들어오는 사람도, 그 뒤도, 또 다음 사람도 계속 같은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다. 여전히 성당 안은 침묵뿐이다.
함께온 그녀는 옆에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묵상에 잠겨 있다. 고개 숙인 그녀에게서 간혹 느껴지곤 했던, 미사포(미사 전례 때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베일)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강렬한 자유의 기운에 대해 떠올려본다. 그녀는 한가지 붙잡은 끈 말고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듯 보이곤 했다. "세상 그 무엇이나 어디에도 묶여있지 않고 '영원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자유'"(윤진 수녀)를 지닌 듯한 초연한 눈빛이 궁금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으로부터도. 마치 이런 것.
"하나의 절대적인 존재, 그에 의지하여 나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이 절대적인 존재와의 자발적인 결합은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상대적인 것에 대한 커다란 자유를 선사한다. 이 하느님께만 나는 최종적으로 책임을 진다. 국가나 교회, 정당이나 회사, 교황이나 그 어떠한 지도자에게도 나는 책임이 없다."(한스 큉, <믿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