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총리, 암사종합시장 상인 격려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7월 9일 오후 서울 강동구 암사동 암사종합시장을 방문해 채소가게에서 야채를 구매한뒤 온누리상품권을 지불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에게 재래시장 온누리상품권을 지급해주는 문제를 놓고 여야의 설전이 한참이다. 지난 6일,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체 추경안에 온누리상품권을 저소득층에 지급하는 사업을 포함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정책이 소비 및 경기부양 효과가 입증된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과거 일본이 실패한 사례를 들며 효과가 불분명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사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누구 말이 맞을까. 기자가 보기에는 양쪽 모두 틀린 것 같다.
야당의 경우, 총론은 옳다. 그러나 이 방법을 통해 더 많은 지역민이 혜택을 볼 수 있음에도 상품권의 용도를 바우처와 같이 바라봄으로써 수혜 범위를 좁은 울타리(취약계층 지원)에 가두어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또 사용처가 한정됨(재래시장)으로 인해 상품권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할인(깡) 시장이 형성되어 결국 정책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정부 여당의 경우,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질이란, 재정확대 정책을 통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살아나지 않는 소비부진을 해소할 방안의 수립과 실행을 말한다. 일본 정부가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상품권이라는 생소한 정책수단까지 동원하고 있는 배경에는 전통적인 정책수단만으로는 소비를 살려내기 어렵다는, 오랜 경험적 판단이 깔렸다.
경기 침체에서 탈출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내하면서도 지난 18년간 양적 완화 정책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돈을 쏟아 부었지만, 반짝 효과만 있었을 뿐,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에 대해 지금 이 나라의 정책입안자들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라도 가진 것일까.
우리나라가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시에 내수가 살아나지 않으면 애초 목표한 성장률의 달성은 물론 경기회복도 요원한 일이 되리라는 것 역시 정부와 국민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놓고 볼 때, 이 정부는 괄목할만한 성과는 고사하고 대한민국호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불과 1년 전 경기 부양을 위해 주택담보대출 제한을 완화한 조처를 하다가 가계부채 규모가 위험 수위를 넘자 이내 방향을 틀어버리고는 '빚내서 집 사라고 한 적 없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신용확대 정책이 곧바로 소비로 연결되는 것이 아님을 바로 옆 나라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데 말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국민이 스스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면 어떤 인위적 처방들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상품권이라는 도구가 맞는가 아닌가가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생산한 부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하려면 어떤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이다. 또 젊은 세대는 쓸 돈이 없어서, 노년 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소비하지 않는 이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국민에게 어떤 희망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정부에게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한편, 최근 몇몇 지자체에서 지역 상품권을 통해 주민들의 소득 보전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질 낮은 삶을 사는 주민들을 위한 생활임금이나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제공되는 기본소득(배당)을 상품권으로 줌으로써 가계 소득수준도 높이고 지역 내 소비도 늘리겠다는 정책 구상이 그것이다.
수도권의 한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청년 기본소득 전액을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상품권 정책이 환전을 전제로 한 인센티브(차액)만을 보전해주는 것이라면, 이 접근방법은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상품권을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매년 상당한 수준의 재정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훨씬 높은 수준의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주민들의 살림살이를 포함해 지역경제는 이전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안전성과 환금성이 확보된 화폐는 그것이 어떤 도구적 성격을 지녔는가에 무관하게 현금과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며 이는 '지역승수효과' 측정을 통해서 이미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가장 큰 도전과제는 이 크고, 담대하고, 위험한 사업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의지와 신념이 존재하느냐는 점일 것이다.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과 반대여론, 법적 의제에 대한 정밀한 검토 등 실제로 이 제도가 도입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계획의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중앙정부가 쳐다보지도 않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실천계획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칭찬해줄 만한 일이라 여겨진다. 혁신적 아이디어 그 자체보다 청년들의 아픈 현실을 좌시하지 않고 문제 해결에 나서고자 하는 진정성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당연시해왔던 것들에 질문을 던져야 할 때소득과 소비의 간극을 메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본소득과 상품권이 함께 공명할 수 있을까. 한 나라에는 하나의 화폐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은 대기업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고 오직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낡은 통념이 아닐까. 이미 익숙한 질서에 침잠되어 마치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길인 것처럼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시에 선례가 없어서 실패할 것처럼 보이는, 맹랑한 시도와 겁 없는 도전을 응원하고 지원해주어야 한다. 왜? 기존의 낡은 접근방법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과제가 우리 앞에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선장에게 키를 맡긴 채,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바다 위에서 나침반 없는 항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