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뭇가사리 바로 채취해온 상태 2
황보름
아침에 달리기를 하다가 중간에 멈춰 섰다. 길가에 거뭇거뭇한 해초들이 죽 늘어서 있어서였다. 사실 며칠 전부터 나는 이게 뭔지 궁금했었다. 주위에 누구라도 있으면 좀 물어볼 텐데 해초 주위엔 매번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둬도 누가 훔쳐가거나 그러진 않는가 보다.
달리기를 마치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일을 하던 스태프에게 그 해초가 뭔지 물었다. 뭐라고 물어야 할지 갑자기 생각이 안나 더듬더듬 거리다 이렇게 무식하게 묻고 말았다.
"그, 길가에 머리채 같은건 뭔가요? 엄청 있던데.""아, 흐흐. 그건 우뭇가사리에요.""우뭇가사리?""네."우뭇가사리가 이렇게 생겼구나. 예전에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엄청 먹어댔던 한천이 생각났다. 한천의 원료가 우뭇가사리라고 했는데, 이제야 우뭇가사리의 본 외모(?)를 우연히 보게 된 셈이었다. 우뭇가사리를 생각하고 있으니 한천을 숭숭 썰어 넣은 냉국을 한 숟가락 푹 떠먹고 싶어졌다. 갑자기 엄마 밥이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토스트와 수프, 커피로 배를 두둑이 채워놔야 한다. 오늘은 우도로 가기로 했다. 양과 함께.
우도에 가면 스피드보트를 타라고 했는데...어젯밤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생긴 일정이었다. 룸메이트 중 한 명이 전날 밤을 우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내고 왔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밤새 떠들썩하게 바비큐 파티를 했는데 이곳은 너무 조용해 어리둥절하다고 말하던 그녀는 내게 꼭 우도를 가보라고 말했다. 다른 그 무엇 때문도 아닌 스피드보트 때문이란다.
소가 돌아 누운 모습과 비슷해 우도라 불리게 된 이 섬에는 8개의 명승이 있다. 이를 우도 팔경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우도팔경을 다 보려면 스피드보트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광경이 있기 때문이란다. 나중에 찾아보니 우도 팔경중 제 1경인 주간명월(晝間明月)을 말한 것 같았다. 암벽 주위의 해식동굴로 들어가면 한낮의 태양이 수면에 반사되 달처럼 보인다고 한다.
우도 스피드보트 경험이 있던 주위의 스태프들도 모두 엄지를 치켜세우며 '만원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그 보트는 '무조건' 타야 한다고 말했다.
"안 타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인데요?""정말 후회 안 할 거예요."양은 이미 마음을 먹은 뒤였다. 그녀는 우도에 가면 짜장면과 땅콩아이스크림을 꼭 먹을 거라고 말했다. 마라도도 아닌 우도에서 웬 짜장면? 중국에선 우도에 가면 다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양은 말했다. 실제로 양이 가지고 있던 얇은 관광책자에는 우도 짜장면 이미지가 커다랗게 콱 박혀 있었다.
나도 마음을 정했다. 양과 함께 우도로 가기로. 그곳에서 우리가 할 건 딱 세가지다. 스피드보트 타기, 짜장면 먹기, 땅콩 아이스크림 먹기.
밥을 먹고 버스를 타러 가는데 하늘을 보니 곧 비가 올 것 같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오후부터 비가 올 확률은 70%란다. 오후라면 몇 시를 말하는 걸까. 비가 온다면 최대한 늦은 오후에 오길 바라며 우리는 성산포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여객터미널에 도착하자 비는 이미 내리고 있었다.
"보, 어쩌지?""양, 우도에 도착하면 스피드보트를 먼저 타자. 어제 그 분이 검멀레 해수욕장으로 가라고 했으니까 우선 그리로 가는 거야. 그러고 나서 짜장면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면 될 것 같아.""응, 그래."우도로 가는 여객선을 타고 가는 동안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다. 우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우도 투어버스를 탔다. 우도 투어버스의 두번째 정류장이 검멀레 해수욕장이었다. 우리는 첫 번째 도착지인 우도봉은 지나가고 바로 두 번째 도착지로 향했다. 내리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스피드보트 선착장을 찾았다. 뛰었다. 마침 비도 많이 오지 않는다. 우리와 같이 뛰던 두 명의 여자가 먼저 선착장에 대고 묻는다. "오늘 하나요?" "오늘 안 합니다." "왜요?" "비 오잖아요."
스피드보트 타기 실패? 나는 양에게 상황 설명을 한 뒤 두 여자는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녀들은 급히 또 어딘가로 가는 게 아닌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들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중 한 명이 스피드보트 타는 데가 여기말고 또 한 곳이 있다고 대답했다. "어딘데요?" "천진항이요." 천진항? 천진항이라면 우리가 도착한 우도 선착장 아닌가? 나는 또 양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어떻게 할까. 천진항으로 다시 갈까, 아니면 말까. 양은 나더러 선택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선택했다. 오늘은 스피드보트 타기 실패.
우도에서 빗속을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