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대장 존>의 속그림. 본문에서 선생은 규칙(교칙)에 따라 아이한테 벌을 주거나 윽박지르기만 할 뿐이다.
비룡소
그림책 <지각대장 존>을 그린 '존 버닝햄'은 어릴 적에 '지각대장'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책 '존'하고 그림책 작가 '존'은 같은 사람이리라 싶습니다. 아무튼, 아이는 어른이 늘 저한테 보여주던 대로 따라 합니다. 딱히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여느 때에 어른이 저한테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꽃을 피웠으면, 아이도 어른한테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여느 때에 어른이 저한테 웃음 짓는 노래를 들려주었으면, 아이도 어른한테 웃음 짓는 노래를 들려주어요.
<지각대장 존>에 나오는 아이는 윽박지름하고 벌주기만 압니다. 사랑이나 이야기를 모릅니다. 아니, 사랑이나 이야기는 가슴속에 깊이 억눌린 채 못 깨어났다고 해야겠지요.
오늘날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아주 많은 어린이와 푸름이가 입시지옥에 짓눌린 나머지 사랑도 이야기도 꿈도 꽃피우지 못하면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녀야 합니다. 대학교에 붙지 않고서야 가슴을 활짝 펴지 못합니다. 대학교에 붙더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붙어야 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조차도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대학교에 붙어야 합니다.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아이라면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대학교 졸업장이 없이는 전문직 일자리를 아예 얻을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입시지옥으로 아이들은 늘 짓밟히고, 입시지옥을 헤쳐도 아이들은 자꾸 짓눌립니다. 대학교를 마치거나 대학교를 안 다녔어도 아이들은 그에 짓이겨지고 삶에 휩쓸립니다.
부디 아이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어른이 늘어나기를 빕니다. 부디 아이들 가슴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교사와 어버이가 늘기를 바랍니다. 부디 아이들 사랑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교육, 사회, 문화 정책이 바로 서기를 바랍니다. '입시 정책'이 아닌 '교육 정책'이 서기를 바랍니다. 교과서를 가르치는 일이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삶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어른들부터 올바로 설 수 있기를 빕니다.
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비룡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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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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