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자료 사진.
윤성효
새정치연합은 지난달 2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어 같은 달 30일에는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도 원세훈·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과 이병호 현 국정원장과 관련 실무자들을 같은 혐의로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김신 부장검사)는 지난달 27일 국가정보원 해킹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사건 성격이 국가 안보 업무와 깊은 관련이 있고 과거에도 국정원을 수사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공안부에 배당됐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운영 방식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만 안보 업무에 대한 지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관련기사:
10년 전엔 국정원장 기소... 이번 해킹 사건은?).
하지만 수사 착수에 열흘 이후, 검찰의 행보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하거나 압수수색을 하는 등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수사 상황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수사는 단서가 나오는 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해킹을 통한 국정원의 정보 수집 활동이 처벌 대상인지 여부에 대해 법리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신중한 행보는 '국정원의 간첩 사건 증거조작 의혹' 사건 때와 대조적이다. 당시에 의혹이 제기되자 검찰은 수사팀을 꾸렸고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으로는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만한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초,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RCS, 리모트 컨트롤 시스템)을 구입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 사찰 의혹이 불거졌다. 이 프로그램은 스마트폰 해킹도 가능해 사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 국정원은 이 프로그램을 대북용으로 사용했을 뿐 민간인 사찰에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18일에는 이 프로그램을 직접 구매하고 운용했던 국정원 직원 임아무개(45)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찰 의혹이 재점화됐다.
'친국정원' 공안부에게 기대?... 안갯속 수사 상황 검찰의 수사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수사를 맡은 공안2부가 '친국정원' 성향의 검사들이 포진돼 있기 때문이다. 공안2부를 지휘하는 이상호 2차장검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맡아 유우성(35)씨를 기소한 수사 책임자다. 이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국정원의 증거 조작이 밝혀졌고, 이로 인해 유씨가 1·2심에서 무죄를 받기도 했다. 또 공안2부 소속 박진원 부부장검사는 2014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정원 파견 경력이 있다. 때문에 국정원 파견 경력의 검사가 엄정한 수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검찰의 국정원 대상 수사 전례를 봐도 그렇다. 지난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 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지만 청와대와 법무부가 반대하면서 수사팀이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임하고, 수사를 맡은 윤석열 팀장은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수사를 이끈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청와대와 국정원의 '혼외아들' 뒷조사 논란 속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국정원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서도 검찰은 국정원 대공수사팀 김아무개 과장을 구속기소하고 윗선으로 지목된 대공수사처장은 불구속기소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해당 사건의 책임자라고 볼 수 있는 대공수사국장이나 차장은 입건조차 하지 않아 꼬리자르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정원의 비밀주의와 폐쇄주의로 인해 의지를 가지고 수사해도 수사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친국정원 검사들로 이뤄진 공안부의 성향도 이번 사건 수사에 한계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의지 부족' 검찰에 힘 실어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