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예수 탄생'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화려한 '동방박사의 경배' 페널 아래 3편의 그림 중 하나로 소품이지만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특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별들이 아름답습니다.
박용은
화려한 부분을 배제한다면,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예술적 성취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텐데 좀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패널 아래 부분의 소품 세 점은 자연주의적 묘사에 빛을 능숙하게 사용한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그림들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아름다운 왼쪽 그림, '예수 탄생'과 성 가족의 고난을 보여주는 중앙의 '이집트로의 도피'는 놓쳐서는 안 될 작품입니다.
어쨌든, 전에도 한 번 언급했지만, 국제 고딕 양식의 정점에 있는 이 작품,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동방박사의 경배'가 피렌체 사람들로부터 열광적인 환호를 받은 것이 마사초의 '브랑카치 예배당' 프레스코로 상징되는 르네상스 회화의 탄생 불과 몇 달 전이었다는 것은 서양 미술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동방박사의 경배'를 끝으로 '국제 고딕 양식'의 숲을 벗어나 다시 르네상스로 가는 복도로 들어섭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좀 넓은 공간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커다란 그림 한 편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파울로 우첼로의 '산 로마노의 전투'입니다.
번쩍이는 창들과 석궁들, 빼곡히 들어선 말과 병사들이 벌이는 치열한 전투. 목각 인형처럼 쓰러진 말들. 한 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이 그림은 1432년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있었던 전투를 묘사한 그림입니다. 원래는 3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인데 나머지 두 작품은 각각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그림은 연작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베르나르디노 디 치아르다가 창에 찔리다'입니다. 제목처럼 시에나의 장군이 창에 찔려 쓰러지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죠.
그런데 이 그림은 전투의 승패가 갈리는 절체절명의 순간보다 마치 창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창들은 원근법을 위한 장치입니다. 자세히 보면 창의 길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당연히 화면의 뒤쪽으로 갈수록 창이 길이가 짧아지죠. 경쟁이라도 하듯 쭉쭉 뻗은 창의 길이와 각도를 활용한 원근법. 이것은 투시원근법과 기하학에 깊이 빠져 있었던 우첼로가 고안한 특유의 기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