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대회 수상자들이 8월 1, 2일 1박2일간 꿈틀리 인생학교에 참석한 모습
신주현
독후감 나누기를 마치고 우리는 '사람책'을 만났다. 참석자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사람책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책은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이준수씨였다.
"수익이 많지 않아도 나는 많이 쓰지 않으니까 괜찮고, 내 마음대로 원하는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아주 명쾌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의 내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나는 7살 때부터 16살 때까지 강원도 영월이라는 곳에서 자랐다. 영화관, 편의점, 심지어 그 흔한 패스트푸드점 하나 없는 아주 작은 동네였다. 여름에는 학교 앞 강에서 다슬기를 잡으며 놀았고, 겨울에는 이웃들과 함께 농사지은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았고 놀거리, 볼거리 하나 없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10년이었다.
내가 읽은 책들의 대부분을 그때 읽었고, 큰 꿈을 품었으며, 경쟁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말 무렵, 서울로 오게 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서울의 친구들은 이미 고등학교 과정까지 예습이 끝나 있었고 특목고 준비로 열을 올렸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었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게 맞춰 진도를 나갔다. 다른 세상에 혼자 떨어진 느낌을 받았고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학교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우울했고 눈물이 많아졌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고 점차 서울생활에 적응하면서 이런 환경에 무뎌지기 시작했고 내 꿈은 'OO대학교 12학번'이 되었다.
왜 그 대학에 가고 싶은지도, 그리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누구나 원하는 대학이니까 그 대학에 가면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다. 인생의 첫 관문이라는 수능을 보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로만 알았다. 선생님들께선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대학에만 들어가면 멋진 남자친구도 사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할 수 있어! 그러니깐 일단 좋은 대학에 가렴! 그러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남편을 만나겠지. 그럼 넌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왜 그때는 이 말이 인생의 진리인줄 알았을까. 막상 부딪힌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목표 없이 성적에 맞춰 온 대학 전공과목은 아무런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서울로 처음 전학을 갔던 때처럼 다시 학교가 가기 싫었다. 누가 전공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역사전공으로 뭐 먹고 살려고 하느냐, 무조건 복수전공을 해라"는 말이었다.
나는 또 그게 좋은 건가보다 생각하고 경영을 복수전공하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답이 아니었다. 휴학기간 동안 나에 대해 돌아보면서 아동, 청소년 교육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정했지만 지금 와서 어떻게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할지 막막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찾기보다는 부모님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번듯한 직업,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좇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나 자신을 외면하면서까지 남에게 인정받는 삶이 과연 성공한 삶일까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김이준수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했던 고민들과 결론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어 감사했다. 인생나누기는 이어진 술자리 시간에서도 계속 되었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더 깊고 많은 이야기를 밤새 꽃피웠다.
"지금, 이미 꿈틀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