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주례를 봐주셨던 김수행 교수님
신현호
2006년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사소하지만 약간은 미묘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장모님은 교회에서 목사님의 주례로 딸의 결혼식을 치르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내 부모님은 교회를 다니시던 분들이 아니어서, 그런 형식을 탐탁치 않게 여기실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와 같이 고민하다 해법을 찾은 것이, 김수행 교수님이었다. 내 부모님이야 대학 은사님이 주례를 선다니, 자연스럽게 생각하실 것이고, 장모님께서는 교회의 어른이신 장로님께서 주례를 서신다고 좋아하셨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선생님, 사모님을 찾아뵙고, 사정을 말씀드리고 장모님을 위해서 주례사에 크리스천 모티브를 넣어달라고 특별 주문을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야, 이 친구야. 나 장로 아니야. 집사야. 교회에서 장로하라고 하는데, 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서, 장로 못한다고 했어."어이쿠 했지만, 뭐 그렇다고 장모님께 '저 장로님은 아니시고, 집사님' 이렇게 말씀드리기도 뭐해서 그냥 패스.
선생님은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는 양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사회에서 얻은 것이 많으니, 사회에 보답하고..." 이런 말씀을 쭉 하시다가, 갑자기, 예수님의 사랑과 신랑신부의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해주셨다.
내 결혼식장을 가득 채웠던, 386들은 '오잉, 김수행 교수님한테 저런 면도 있었나?'라고 생각했겠지만, 장모님과 교회 친구분들 사이에서는 두고두고, '참으로 은총 가득한 주례사'였다고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김수행 교수님 사모님 말씀이 맞았어선생님만큼이나 사모님께도 큰 신세를 졌다. 대학원 시절 술집에서 파하고는 낙성대에 있는 교수 아파트의 선생님 댁으로 몰려가서 수시로 2차 하고, 술 너무 많이 마신 날은 선생님 댁에서 잠까지 자고 그랬다. 그 때 그 인간들 다 받아주시고, 아침 해장국까지 끓여주시던 사모님. 정말 요리를 잘하셨다.
부잣집 따님이셨던 사모님께서, '이렇게 가난한 집인지 모르고 속아서 결혼했다'고 말씀하셨지만 정말 지극정성 선생님을 위해 주셨다. 런던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해서는 한국 가서 교수도 못하고 실업자 될지도 몰라'라고 고민하셨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격려해 주시고, 그 기간 내내 남편과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지셨던 것도 사모님이셨다.
내 결혼을 앞두고, 내 처에게도 축하와 함께,
"유리씨도, 각오하고 살아야 돼. 이 사람들 세상일 다 아는 것처럼 똑똑해 보여도, 다 허당이야. 말하자면 세상에 알아야 할 1에서 5까지는 모르고 6에서 10까지만 아는 사람들이야. 속 터질 일 많을 거야."요즘 내 처는, 남편이 답답한 소리할 때마다, "그래, 김수행 교수님 사모님 말씀이 맞았어... 어쩌겠어, 내가 참고 살아야지"하면서 체념인지, 이해인지 그러고 산다.
선생님,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세배 드리러도 못 가고, 스승의 날에도 찾아뵙지 못하고... 너무 죄송해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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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교수님의 '주례사',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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