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포전기육의전거리에서 모시 파는 가게를 알리는 깃발
이정근
종루(보신각)를 중심으로 운종가에 있던 육의전에는 면포전, 지전, 저포전, 어물전, 명주전, 선전 이렇게 여섯 종류의 가게들이 있었습니다. 일반 서민들과 거리가 먼 사대부나 왕실 조달품목입니다. 일종의 어용상점이었습니다. 서민들은 자급자족하거나 없으면 헐벗었습니다. 시장경제가 돌아가기 시작한 중기 이후, 난전(노점상)을 필두로 배오개 시장과 칠패시장이 발달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고위층은 중국에서 건너온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나라가 망한 지 언제인데 중국제는 계속 '당화'라 불리며 고위층의 로망처럼 여겨졌습니다. 오늘날의 명품처럼 말입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고급 잡화는 없어서 못 팔았습니다. 서대문 사거리에는 중국제 장신구, 화장품, 귀금속, 귀한 약재, 구하기 어려운 책, 질 좋은 붓 가게가 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들여온 물건을 일본으로 재수출하는 중개무역도 이뤄졌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보세창고'가 즐비했습니다. 왜관에서 샘플을 보고 흥정이 끝나면 부피가 작은 물건은 육로를 통해 문경새재를 넘었고 부피가 많은 것은 삼개나루로 보내 부산으로 해상운송 했습니다. 이러한 거리가 서대문 사거리였습니다.
반송정, 서지, 돈의문... 서대문 사거리의 다양한 모습타지로 떠날 때, 가족, 친지들로부터 어디에서 환송받고 싶으십니까?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역, 관부연락선이 떠나는 부산항, 해방 후에는 김포공항이었습니다. 지금은 인천공항이 송별의 장소가 아닐까요. 조선시대에는 반송정(지금의 금화초등학교)이 송별장소였습니다. 지방이나 외국으로 파견되는 '엘리트' 관리들만이 송별회를 열 수 있어서, 조선 선비들이 동경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어디로 나들이를 나가고 싶으십니까? 일제 강점기에는 창경원, 전쟁 후에는 남산공원, 박정희 시대에는 어린이대공원이 인기 있는 나들이 명소였고, 지금은 과천 서울대공원, 에버랜드, 롯데월드, 워터파크 등으로 많이 놀러 갑니다. 조선시대는 어떨까요? 놀이공원이 없던 조선시대에는 돈의문 밖 서지(西池), 숭례문 밖 남지(南池), 동대문 밖 동지(東池) 등 한양성곽 주변의 연못 등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 중 서지(西池)가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개성에서 옮겨온 연꽃이 만발한 7월이면 장안의 여인들이 몰려나와 향연을 즐겼습니다.
서대문 사거리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돈의문이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강제로 헐리고 아직 복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에 의해 경복궁이 헐리고 광화문이 헐렸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은 광화문을 콘크리트로 복원했습니다. 조선시대 목조건물을 시멘트로 복원한다니 어처구니없습니다. 그걸 헐고 최근 다시 복원했는데 현판이 갈라지고 원목이 뒤틀리고 있습니다. 조상들 보기 부끄럽습니다. 돈의문 복원이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흔적이 살아있는 서대문 사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