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I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 1995. 이 로제타 석에 백남준 예술론이 요약되어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때 찍은 사진
김형순
백남준은 같은 해 로제타석(石) 형식에 영어·프랑스어·독어·일본어·한국어 5개 국어로 자신의 예술의 골자가 담긴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시베리아-몽골리언 요소를 좋아한다(Ich mag das chaotische sibirisch-mongolische[독일어])"거나, "굿의 어원은 '얼' 즉 정신자체이니 미디어와 굿은 거의 같은 말이다[한국어]"거나 "의심할 여지없이 나의 몽골선조들은 이 문화로 내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Mes ancêtres mongols m'inspirent sans doute ce nomadisme culturel[프랑스어]" 등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 내용을 분석해보면 그의 예술은 몽골전승의 굿과 샤머니즘에서 온 것이고, 전자시대 거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라는 해석이다. 백남준에게 '미디어'란 중세개념으로 신과 교류하는 '매개체(meditator)' 혹은 '영매(靈媒)'를 뜻한다. 다시 말해 굿과 샤머니즘, 미디어와 퍼포먼스는 서로 다른 게 아니라 같다는 설명이다.
또 백남준이 이런 몽골의 샤머니즘에 열광하는 이유가 거기에 모든 예술의 원천이 되는 원시적 생명력이 넘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굿에서도 보면 무당이 산자와 죽은 자마저도 소통시키는데 세상에 이렇게 원활할 '미디어'가 어디 있는가.
이런 면에서 볼 때 백남준은 서양과학이 추방시킨 야생적 사고의 복원을 요구한다. 서구에서 끔찍한 나치 역사가 그에게 큰 각성을 주었으리라. 그래서 백남준은 야생적 사고와 원시적 상상력 결핍이 현대인의 비극은 낳는다고 봤고 이것은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레비스트로스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 백남준은 말하기를, 그의 어머니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고 했다. 물론 백남준 자신은 어머니처럼 샤머니즘을 종교로 믿는 건 아니나 샤머니즘에서 예술적인 영감의 소재로 끌어와 샤머니즘을 예술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백남준 최고정점에서 쓰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