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어린이가 종이에 알록달록 쓴 글을 언제나 책상맡에 놓고 새롭게 돌아봅니다. '마음을 담아서 쓴 글'일 때에 마음을 울릴 수 있다고 느낍니다. 작가라면, 표절 시비를 받을 노릇이 아니라, '글에 담은 따스한 넋'으로 사랑을 받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최종규
평론집 <한국문학의 거짓말>은 한국문단이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저지른 슬픈 모습을 찬찬히 따지고 나무랍니다. 여기에 숱한 기성작가와 인기작가가 시장 논리에 얽매여 '아름다운 문학'이 아닌 '팔리는 문학'에 기울어진 대목을 낱낱이 짚고 꾸짖습니다.
'잘 팔리는 문학'이 나쁘다거나 잘못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잘 팔리는 문학은 잘 팔리는 문학일 뿐, '아름다운 문학'이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잘 팔리면서 아름다운 문학이 될 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아름다운 문학일 때에 나중에 잘 팔리는 문학이 되어도 아름다운 숨결을 잇습니다. 처음부터 잘 팔리기만 하는 문학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겉치레와 껍데기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문학을 하는 이들은 '멋진 글'이나 '빼어난 작품'을 선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문학을 하는 이들 스스로 '아름다운 삶'으로 '사랑을 담아 쓰는 글'이 되면, 독자는 이내 이러한 글을 알아봅니다. 독자가 재빠르게 알아볼 수도 있고, 독자가 알아보기까지 여러 해가 걸리거나, 때로는 백 해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문학을 하는 사람, 창작을 하는 사람)은 '잘 팔릴 만한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오직 '글(창작)'을 쓰는 사람입니다. 온 넋을 기울여 아름다운 꿈을 사랑스레 빚어서 글로 선보이는 사람이 바로 '작가'입니다.
작가는 연예인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며 대통령이나 기자도 아닙니다. 작가는 언제나 작가입니다. "짓는 사람"은 이웃한테서 배우고, 나무와 꽃한테서 배웁니다. "짓는 사람"은 아이한테서도 배우고, 하늘과 우주한테서도 배웁니다. "짓는 사람"은 너른 마음으로 기쁘게 배운 뒤에 '새로운 이야기를 짓'습니다. "짓는 사람"은 "훔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짓는 사람"은 삶과 꿈과 사랑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칼의 노래>와 <검은 꽃>이 독자의 인식적 지평을 넓혀 주거나 무언가 깨달음을 줄 만한 대단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를 푸념하는 통속적인 수준의 소설로도 평단의 주목과 독자의 환호를 받는 것이 오늘날 한국문학의 현실이다. (336쪽)
'표절 논란'이 불거진 뒤에도 문단권력은 바뀌지 않습니다. 문단권력이나 상업 출판사가 바뀐 모습은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주 단단하고 무시무시한 쇠밥그릇입니다. 표절 논란이 조용히 잊혀지는 이즈음에도 '표절 작가 책'은 잘 팔립니다. 아무래도 문단권력과 상업 출판사는 이 대목을 노리겠지요. 지난 2000년부터 '표절 비판'이 있어도 이를 모르쇠로 넘어온 까닭은, 2015년에 아주 크게 표절 비판이 일어도 꿈쩍하지 않는 까닭은, 이러거나 저러거나 '인기작가 상품'은 잘 팔려서 돈이 됩니다.
"훔친 글"로 돈을 잘 벌고 이름값하고 권력도 그대로 이어가는 모습을 이 나라 아이들과 젊은 작가들이 고스란히 지켜봅니다. 문단권력 어르신하고 인기작가 어른들은 아이들과 젊은 작가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셈일까요? 참말이 없는 문단권력은 돈만 잘 법니다.
한국문학의 거짓말 -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
정문순 지음,
작가와비평,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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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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