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바꿔치기' 의혹이 일었던 국정원 직원의 빨간색 마티즈 차량이 폐차됐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이런 의혹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사진은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가 지난 22일 같은 장소에서 재연 실험을 벌인 영상 중 한 장면이다.
경기지방경찰청
지난 2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바꿔치기' 논란이 일었던 폐쇄회로 카메라 속의 마티즈 차량 번호판이 '녹색'으로 판독되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문제가 된 "차량 번호판과 색상을 판독한 결과," 그것이 "녹색 전국 번호판(2004년 1월~2006년 10월)으로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국과수는 경찰의 의뢰를 받은 영상에 대해 "확대보간 및 선명화 처리"를 해서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문제가 된 저해상도 화면을 디지털 처리해 보니, 글자를 인식할 수 있었고, 색상도 녹색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영상 매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해명이었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저화질 영상이어서 차량 번호는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국과수의 주장이었다. 이들은 보도자료를 내면서, 관련 영상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조악한 설명을 달았다.
"차량 번호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낮은 해상도에서는 밝은색 부분이 더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녹색 번호판이 흰색 번호판으로 색상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폐쇄회로 카메라에 찍힌 차량 번호판이 논란이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영상 속 번호판이 흰색으로 보였을 뿐 아니라, 글자가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국과수 주장대로 "낮은 해상도에서는 밝은색 부분이 더 두드러진다"면, 흰 글자가 검게 보일 수는 없다.
만일 녹색 번호판이 반사되어 흰색으로 보일 정도라면, 흰색 글씨는 흰색 바탕에 묻혀 아예 보이지 않아야 한다. 흰색의 반사율(albedo)은 녹색의 3배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색상 왜곡' 운운하는 이야기로 덮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길게 말할 것 없다. 국과수는 '확대·선명 처리'했다는 이미지를 공개하라.
국과수의 억지, 경찰의 '증거 인멸'국과수의 설명은 기술적으로만 납득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모순이었다. 국과수는 영상 속 마티즈가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차량이라고 주장했다. 선바이저, 몰딩, 사이드미러 등 부착물이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임씨 차량과 폐쇄회로 카메라(CCTV) 영상 속 차량이 서로 다른 차량이라고 볼만한 특징은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르다는 증거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증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 "나는 천재"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과 같다. 더욱이 실제 차량은 이미 폐차되어 실물을 확인할 수도 없게 되었다.
경찰은 사건 당일인 18일 증거 차량을 가족들에게 인계했고, 이 차는 22일에 폐차되었다. 공교롭게도, 22일은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현장 사진과 CCTV 영상 속의 차 번호판 색깔이 다르다는 의혹을 제기한 날이었다.
경찰은 문제의 마티즈 차량의 폐차 경위에 대한 의문에 대해 "차량 내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한 경우, 차량을 감식하고 내부에 남아있는 유서나 유품 등 관련 증거를 모두 수거하면, 차량을 유족에게 즉시 반환하는 것이 통상적인 수사 절차"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은 "이번 변사사건의 경우에도 해당 차량이 범죄에 이용된 차량이 아니다"라고 했다.
논란이 일자, 경찰은 "범죄에 이용된 차량"이 아닌 한, 증거를 수거하고 차량을 유족에게 즉시 반환하는 것이 통상적인 수사절차"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차는 대국민 해킹과 관련 증거 삭제라는, 명백한 범죄에 연루되었던 차다. 더욱이 해킹 사실이 보도되기 직전 차량을 구입한 점과, 뚜렷한 자살 동기도 드러나지 않은 점, 국정원의 '실종신고 지시' 등 밝혀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증거가 될 자동차를, 사건 바로 당일 유족에게 돌려줘 폐차하게 한 것을 온당하다고 믿으란 말인가? 이러니, 댓글들 가운데 경찰이 '증거인멸을 도왔다'거나, '정말 자살하기는 한 거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해킹 혐의가 드러난 후, 국정원과 경찰의 행동이 보인 행동은 어느 것 하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기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기억상실증'의 국정원, 유서조작의 국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