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을 배우는 오병환씨농성장을 찾은 자원봉사에게 뜨개질을 배우는 오병환씨
김예지
자원봉사자 최창덕(52)씨는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서명 부스를 준비하고, 분향소에 들러 비뚤게 걸려있는 영정 사진을 하나하나 매만졌다. 그는 지난해부터 농성장에서 지냈다. 영석 아빠(단원고 2학년 7반) 오병환(44)씨와 같은 반 민우 아빠 이종철(48)씨와 이곳에서 겨울을 났다. 그는 "부모이기 때문에 농성장에 오게 됐다"며, 농성장을 '집'이라고 표현했다.
"원래 집에는 몇 달에 한 번 들어갈까 말까 해요. 그럼 딸들이, 자기들은 딸 아니냐고 그렇게 말하죠. 그럼 그렇게 답해요. '너희는 지금 살아있지 않느냐'고. 자주는 못 보지만 아빠도 볼 수 있고, 친구들도 볼 수 있고…."안산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목요기도회를 하다가 실종자 가족과 연이 닿았다는 신학대생 전이루(27)씨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농성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었다. 더운 날씨 탓에 피켓 시위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이 흘렀다. 이날 서울의 최고 기온은 31도였다.
"덥지만 힘들지 않다"고 말하던 전씨는 "미수습자 가족분들의 목소리가 많이 소외됐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분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와 친구들이 들고 있던 피켓에는 "올해 안에 인양하라", "세월호에 아직 가족이 있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 달 전부터는 농성장에 상주하는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 단원고 2학년 2반 다윤 아빠 허흥환(52)씨다. 허씨는 오전에 청와대 분수 광장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점심 먹은 뒤 농성장에 온다고 했다. 허씨가 농성장으로 가면, 다윤 엄마 박은미(45)씨는 홍대로 이동해 피켓시위를 이어간다.
"힘들죠. 더우면 더워서 힘들고, 추우면 추워서 힘들고. 그런데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요."허씨가 농성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으면, "돈을 얼마 받고 피켓을 드는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아직 다윤이를 포함한 실종자 9명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다. 허씨는 그들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해 설명한다. 설명해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수긍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리기 위해 이곳에 있는 거죠." 농성장 가운데, 야외 테이블에는 영석 아빠 오병환씨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 노란 실 뭉치와 함께다. 그는 "뜨개질을 연습하는 중이다, 스웨터를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뜨개질 같은 걸 여기서 다 배웠어요. 여기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잡생각이 들어요. 이런 거에 집중하고 있으면 잡생각을 덜 하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지 뭐. 아들도 보고 싶고... 혼자 방에 들어가서 울기도 하고."손에 차고 있던 세월호 문양의 실 팔찌도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 했다. 지난 1년간 농성장을 지켜온 오씨는 앞으로의 일을 쉽게 낙관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들어갈 시간이, 이제껏 흘러온 시간만큼 길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의 천막은 지난해 7월 14일 세워졌다. 올해는 농성장 1주년을 맞아 비닐 천막을 걷어내고, 합판으로 벽을 만들었다. 더 튼튼해진 농성장에서 긴 세월을 버텨내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