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제 ‘전태일 문학상’ 수상자.
김영숙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저는 글쓰기 공부를 한 적도 없습니다. 혼자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 포기하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회사가 어렵다고 여름 휴가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휴가가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밥 먹는 시간 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썼어요. 초등학생 글만도 못하지만 일주일 만에 쓰고 싶었던 것을 거의 다 썼지요. A4 용지로 스물다섯 장이 되데요."
이근제(60)씨는 당시 강순옥 월간 <작은책> 편집장에게 자신이 쓴 글을 보여줬다. 교정교열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강 편집장이 <작은책>에 싣자고 해, 1999년 11월호부터 '바보처럼 살아온 지난날'이라는 제목으로 총13회 연재했다.
이씨는 이 글을 다듬어 '살아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001년 10회 전태일 문학상 생활글 부문에 응모해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1985년 인천 동구 송현동으로 이사 온 이씨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곳에서 살고 있다. 지난 19일,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그를 만났다. 수줍은 듯 작은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했지만, 글만큼이나 짜임새와 조리가 있었다.
나를 돌아보게 한 글쓰기1956년 2남 2녀의 셋째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네가 네살 때 물동이를 이고 가는 나한테 업어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너를 집어던졌다'고 어머니가 얘기해줬단다. 한 번은 열 살 무렵 학교를 '땡땡이' 친 그를 뒷동산까지 쫓아온 아버지가 가방을 내던지기도 했단다.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아버지가 엄해서 억눌려 지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걸 풀어내고자 글을 쓰고 싶었나 봐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를 따라 서울로 와 그때부터 철공소, 전파사, 고무신 공장을 거쳐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시작했습니다. 1980년에 결혼했고, 1985년 인천으로 이사 와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에 다니고 있습니다."열 살 때부터 인천으로 이사 온 서른 살까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쓴 이씨는 "다 쓰고 보니 제 얘기보다는 아내를 미워하고 탓한 게 많아 놀랐습니다"라고 했다. 스스로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해 생일에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단점'을 글로 써 선물로 달라고 했다.
"글쓰기는 나를 성찰하게 하는 것 같아요. 글을 쓰다 보니 화살이 아내한테 향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내가 잘못한 게 많더라고요."무조건 써라'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월간 <작은책>은 1995년에 창간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이씨는 사업장에서 처음 봤다.
"창간하기 전 준비호가 현장에 돌아다니더라고요. 책이 마음에 들어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습니다."그 후 이씨는 집회장에서 <작은책>을 홍보하는 가판대가 있으면 찾아갔고, <작은책> 관계자로부터 글쓰기 모임에 나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왠지 어색해 거리를 두다가 자신의 글이 <작은책>에 실린 후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재작년까지 10년간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글이 쓰고 싶지만 자신 없어 하는 노동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니, 무조건 쓰라고 했다. 쓰고 나서 소리 내어 읽고 사람들과 나누라고 강조했다.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해요. 지적을 많이 받을수록 글 솜씨가 늘어요. 저도 처음엔 창피했는데, 혼자만 갖고 있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처음에 보여줄 때가 두려워요. 하지만 서너 번 보여주면 얼굴이 좀 두꺼워집니다. 그것만 이겨내면 발전할 수 있습니다. 또, 소리를 내어 읽어보면 틀린 것을 스스로 발견하기도 하고 더 좋은 단어를 찾기도 합니다."이씨는 말 잘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잘한 게 아닌 것처럼 글도 마찬가지로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꾸 쓰고 고치다보면 잘못된 곳이 보이고, 글 쓰는 수준도 는다고 했다.
정년퇴임 맞춰 단행본 발간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