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이 진행중인 돈의문 뉴타운 지역의 모습
2015반빈곤권리장전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1일에 걸쳐 이루어진 '2015반빈곤권리장전' 활동을 통해 삶의 터전에서 일순간 타자가 되어버린 서울 종로구 돈의동 재개발 지역 상가 세입자들을 만났다.
그 곳은 영화 속에서 보던 허물어져 가는 낡은 집도, 으스스한 거리도 아니었다. 아름답게 꾸며진 그곳은 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는 직장인들이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지나치며 보기엔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그곳의 이야기에는 한숨과 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
돈의문 철거민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18년 전 처음 이 자리에 정착했다. 업종 변경도 하고 꾸준한 연구와 성실한 태도로 차차 손님을 늘려갔다. 장장 십수 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우리들 누구나처럼,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생 역전을 바란 것도, 갑자기 수억 원이 굴러들어오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대로, 과거에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평범한 그 삶을 그 장소에서 계속 열심히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2012년 어느 날, 수십 명의 상인들이 삶을 살아가고 인생을 계획하던 터전은 어느 순간 '청약경쟁률이 평균 3.5:1에 달하는', '광화문과 시청이 한달음에 더블 역세권'인 재개발 구역의 공원 터가 되어 있었다. 누구도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그에게 날아든 것은 이미 누군가가 정해 놓은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과 철거통보뿐이었다.
"얼마 전에 인테리어 한 것만 8000만 원인데..."이곳 상가 세입자들은 누군가가 정해 놓은 '적법한' 보상금을 통보 받았다. 그는 이미 법을 통해 해볼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보았다며,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법에 몹시 실망한 상태였다. 보상금 산출방식은 쫓겨나는 세입자들 눈에는 생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현실감 없는 공허한 생색내기일 뿐이었다.
정성과 애착이 담긴 삶의 공간을 느닷없이 돈으로 평가받게 되었고 숫자로 표현된 그 가치는 턱없이 적었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은 수십 년간 쌓아온 영업권에 대해 이전을 위한 휴업 손실에 대한 4개월치 영업이익으로만 보상해 줄 것을 명하고 있었다. 상인들의 인생이 담긴 투자는 생전 처음 발을 들이는 감정평가업체 직원에 의해 싹둑싹둑 잘려 평가절하 되어 버렸다. 개발사는 인테리어 비용에도 못 미치는 보상금을 쥐어주며 법대로 하자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건 이전이 아니지, 창업이지"상가 세입자들이 원하는 것은 재개발 후에도 영업할 수 있는 대체상가를 인근에 지어 세입자들을 수용해 주는 것이다. 책상 앞에서 숫자로 수익률만 계산하는 투기개발 자본과 시공업체에게 세입자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 걸까. 타지에 새로 정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수십 년 닦아놓은 상권과 단골 손님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설명하며 주장한 대체상가는 가뿐히 묵살되었다.
세입자들은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소요되는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아무도 제시해주지 않은 상황에서 이전을 종용 당하고 있었다. 20여 년 세월을 온 몸으로 버티며, 혹은 은퇴 후 퇴직금으로 애써 닦아놓은 인생의 터전을 빼앗기고 갑작스레 새로운 장소에서 일면식 없는 손님을 대하며 또다시 수십 년의 노력을 투자하기엔 그들은 너무 지쳐 있었다. 하루 하루 평온하게 보람을 느끼던 일터는 언제 밀려나 나앉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장소가 되어 버렸다.
"원순씨...... 여기 아직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