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지역에 게시할 플래카드를 쓰고있는 <2015반빈곤권리장전>대원들
2015반빈곤권리장전
시청역 8번 출구로 나오면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시청을 마주보고 있는 그 골목길에는 삼성 본관, 신한은행 본점, SK, CJ 등 대기업의 건물들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낯선 이방인들로 가득한 서울에서, 이곳은 뉴스에서 봐왔던 오랜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새로운 고향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이 해마다 꿈을 품고 오는 이곳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녹록지가 않다. 높은 건물들 사이사이로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빈민을 마주할 수 있다.
서소문 5구역이라 불리는 태평로 부근, 삼성 본관 사이에는 작은 상가들이 있다. 직장인들의 끼니를 위한 음식점, 카페 등이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5년 전 전재용(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씨가 이곳을 사들였고, 이 구역이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상가 세입자들은 재개발을 명목으로 계약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다짜고짜 보상도 없이 언제까지 비우라는 변호사의 한마디에 상가 세입자들은 합법적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11명이 시작한 투쟁, 이제는 한 명만이...그렇게 시작한 투쟁, 다섯 개 건물 다 합해 11명이 시작한 이 투쟁은 현재 한 명만이 남아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전국철거민연합에 가입하여 투쟁을 배우며 인근 지역과 연합하여 싸우고 있는 최진희씨. 여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겁에 떨었던 그녀는 어느새 '투쟁하는 철거민에게 미래가 있다'며 민중 투쟁을 외치는 억센 투쟁인의 모습이 되었다. 지난 6월 말 그녀를 만났다.
남편과의 맞벌이로 저축을 하며 미래를 준비했지만, 투쟁을 시작하면서 가게 운영이 힘들어졌고, 최저생계비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계에 빚이 생기고 몸은 매일 지쳐가면서 엄마의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매일 아침 간단한 계란 요리로 아이들의 끼니를 챙겨주며 '엄마, 나 닭 되겠어'라는 아이의 말에 그녀는 씁쓸하게 웃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으로 바뀌면서 전두환의 세금 추징 문제가 대두되었고, 그에 따라 재개발 투자에 차질이 생겼다. 중지된 재개발 사업은 철거민들의 상황을 더욱 불안정하게 했다. 개발 사업이 멈췄기에 철거가 강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장사하기도 나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