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쇼토 변두리우삼바라 지역의 읍내인 루쇼토가 가까와지자 하나 둘씩 인가가 나타난다.
이근승
아침 7시에 출발한 지가 언제인데, 버스는 오후 두 시가 되도록 우삼바라의 읍내인 루쇼토에서 진을 빼고 있다. 오는 도중 사바나 평원에서 버스가 퍼졌는데, 그때도 그랬다. 모두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버스 안에는 '언제 떠나나' 안절부절못하는 므중구(외국인)만 있었다.
여기저기 사람들은 그늘이 드리운 가시나무 아래에서 시시덕거리며 늙은 바람을 맞고 있었고, 뭔가에 안달 난 외국놈 하나만이 태양에 뜨겁게 달구어진 버스 안에서 오도가지도 못하고 성난 표정을 해댔다.
차를 고쳐야 할 운전수는 담배를 피워가며 조수랑 처자식 이바구를 하는데, 왜 그러고 있느냐고 따지는 놈 하나 없고. 그렇게 태평하게, 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차는 부릉부릉 떨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태워서 떠나고......
"조수 아저씨, 얼마 후에 떠나는 거죠?"루쇼토에 도착하기 무섭게 다들 일어나 내려버리니, 물어 볼 수밖에. 자기도 모르는가 보다. 먼저 내린 운전수를 뒤따라가 뭐라고 하더니만, 친절하게도 돌아와 하는 소리.
"조금 있다 간다고 하네요.""얼마나 조금?""쪼오끔!"더 물어봤다가는 괜히 나만 또 열 받는다. 그래도 혹시나, 가방을 가지러 다시 들어온 사내를 붙잡고 물어본다.
"곧 떠날 거요.""얼마나 곧?""그러니까 고옫."끄응, 다시 후덥지근한 버스 안엔 외국놈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짐작건대 점심시간이라 짬을 준 것이 분명한데, 정확히 언제 떠나는지 알아야 마음이 편할 터이다. 아침을 거른 터라 창문 밖으로 만다지(기름에 튀긴 밀가루 빵) 몇 개와 물병을 사서 먹는데 조바심으로 뱃속까지 부글부글 끓는다.
사람들은 어디 있을까. 저어기 나무 그늘 아래 퍼질러 앉은 여남은 명, 식당 앞에서 닭 다리를 뜯는 남자들하고, 이 와중에 대체 잠이 올까나. 평상 위에서 자빠져 자는 사람들...
좌불안석으로 시계만 쳐다보고, 한 시간 반이 넘어서야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다시 반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으로 돌아온 운전수가 시동을 건다.
대체 이들은 어떻게 알까? 조금이라는 시간은 얼만큼이며, 또 귀신같이 어떻게 거기에 맞춰서 들어오는지. 그리고 떠날 시간을 앞두고 왜 그렇게 태평하며, 나는 왜 바보같이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것일까.
정오를 지난 태양이 기울어 갈수록 산은 깊어만 가고, 모든 것은 차츰차츰 변해만 간다.
치마와 바지를 입은 모시 사람들과는 다르게 아랍인들처럼 천을 허리와 머리에 두른 여인네들이 보인다. (일찍이 10세기부터 탄자니아는 아라비아 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정착하여 아랍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파키스탄의 카라코람에서, 인도의 마닐라로 가는 여정에서, 히말라야의 시킴을 휘젓고 다니다 만난 얼굴들이 이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땅에서 서성인다. 그리고 시냇물 가장자리에 살얼음처럼 웅크린 이 창날 같은 공기, 새벽녘 문풍지로 스며들어 코끝을 베고 도망치던 검푸른 빛, 그 속에 들어앉아 시리도록 서늘한 풍경들.
모든 것은 너무나 닮아 있다. 사람도, 풍경도, 냄새도.
아. 그토록 잘나 보이기를 소망했던 분별의 어리석음이여, 살아감의 단순함이여, 내 너와는 다름을 줄기차게 주장하였더라도. 얼굴이 틀리고 무엇을 숭배하고 어쩔지라도, 이토록 산이 주는 세상은 닮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