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반빈곤권리장전>에 참가한 대학생들. 뒤에 보이는 벽화는 대학생들이 그린 것이다.
2015반빈곤권리장전
주민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벌써 오후 5시였다. 해가 지기 전에 이틀 뒤에 있을 마포구청 규탄집회에 관한 유인물을 돌리러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함께 나섰다.
종종 철거민들은 '주민들이 더 많은 보상금을 노리고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다. 유인물을 돌리면서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유인물에는 주민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주거생존권'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민들은 멀쩡히 살던 집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여서 직장과의 거리가 멀어지거나 임대료 수입이 끊겨 생계유지에 차질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돌아갈 집이 있기를, 또 생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박한 권리가 바로 주거생존권이고 주민들은 보상금보다 주거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주대책을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다. 철거지역에 살던 사람들에게 임시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 단지를 제공하는 '순환식 개발방식'이나 공정한 감정평가로 합리적인 보상금을 제공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생각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가질 수 있게 된 힘은 주민들이 직접 꾸린 자치공동체에 있다. 우리는 유인물 돌리기가 끝나고 6시쯤 시작하는 주민회의에도 참가했다. 염리 제2구역 철거민연합위원장 박종팔 씨를 필두로 30~40명이 모인 이 공동체는 자발적으로 철거, 도시개발법과 뉴타운 정책들을 함께 공부하고 의논한다.
주민들은 전국철거민연합과 연대하며 그곳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법원 투쟁, 검찰 투쟁, 행정 투쟁, 일상 거리 투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집단적이고 치밀한 대응의 결과, 주민 이인순 씨는 조합과 시공사를 상대로 한 명도 소송에서 두 차례나 승소했다.
철거 상황은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철거민 측이 승소한 일은 드물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어쩌면 염리동 주민들을 통해 다른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염리동의 주민들은 스스로 알아내고 공부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낼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2015반빈곤권리장전>의 이름으로 참가하여 직접 목격한 '빈곤'은 우리가 보통 '빈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랐다. '빈민'들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단지 그들이 가진 것을 억울하게 빼앗겨 그것을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목격한 빈곤에 따라 빈민을 '자신이 갖고 있던 것을 빼앗긴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없어질 것들을 쥐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자본에 의해, 공권력에 의해 언제든 빈민이 될 수 있다.
큰 변화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 시작된다. 빈곤을 만들어내는 G 건설 자본과 공권력보다, 염리 철거민들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소용없는 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용산 참사 당시 주민들의 희생투쟁 끝에 철거법의 개정이 이루어졌고, 염리동 주민들도 힘을 합쳐 명도소송 승리를 끌어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만든 작은 변화들도 쌓여 언젠가는 사회의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이 이길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속담이 이길지는 시간이 보여주겠지만, 전자의 속담이 승리하는 그 날까지 철거민들이 지치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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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경쟁을 강요하고 격차를 심화시키는 사회에서 발생합니다. 빈곤사회연대는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서 한시적 원조나 시혜가 아닌 인간답게 살 권리, 빈곤해지지 않을 권리를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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