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릴 예정인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권우성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4년 8월 13일 전군의 주요 지휘관들과 병영문화혁신위원 등을 불러 모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그동안 쌓여온 뿌리 깊은 (군의) 적폐를 국가혁신과 국방혁신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다. 옳은 말이다. 분명 병영생활을 하는 우리 군인의 현실은 교도소 재소자의 그것만도 못하다.
적어도 오늘 우리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이 '기강'을 잡기 위한 가혹 행위나 일방적인 폭행으로 죽어갔다는 소식은 없다.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을 착취하거나 권한을 남용하여 부조리한 일을 획책한다는 소식도 드물고, 재소자가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죽어갔다는 소식도 없다. 부당한 수형생활을 못 견뎌 재소자가 자살했다는 소식도 잦아든 지 오래다.
그러나 군대에선 아직도 이런 일이 속출한다. 누구나 알고 있던 부조리와 비리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질 않고, 대책을 마련한다는 와중에도 폭행과 부정부패 관련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하물며 대책을 마련한들 진짜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정말 적폐도 이런 적폐가 없다.
뿌리 깊은 적폐, 감옥보다 못한 군대?그렇다면 대체 교도소와 군은 뭐가 달랐기에 오늘날 이런 차이를 보일까? 교도소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인권상황에 대한 상시적 감시를 받는다. 또, 교도소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교도소 외부 기관에서 수사가 이루어져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된다. 교도관들 또한 폐쇄성을 탈피하고 스스로 인권의식을 가다듬으며 부조리를 차단하려고 노력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은 법과 제도의 변경을 통해 시작되고, 발전하고, 정착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발생하는 군의 전근대적 악습 또한 투명성 제고를 통한 민주적 감시의 강화 그리고 독립된 외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의 감시 및 조사와 처벌을 통해 상당 부분 나아질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독재정치와 더불어 군부 엘리트들이 한동안 우리 사회의 강력한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동안에는 군 문제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위험부담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전되어 군의 정치개입이 차단되었다는 지금에도 군과 군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미약하다.
단지 간간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군내의 인권유린이나 폭행사건, 잊어버릴 만하면 터지는 총기 난사사건, 진료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젊은 병사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만 순간적 관심과 비판이 끓어올랐을 뿐 그 본질에 대한 천착과 제도적 정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심각한데 여전히 별다른 변화가 없다.
군대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되게 운영되어야
군이 존재하는 이유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법에 의한 지배가 보장되는 정치적 공동체를 수호하는 데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라고 한다. 그렇다면 군대 자신도 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되게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점이 무시되면, 군인은 결국 상관의 명령이면 무엇이든지 복종하는 노예나 기계가 되어 국가가 공인하는 폭력집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현대사에서 우리 군이 저지른 여러 가지 어두운 사건들은 그러한 점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군이 헌법적 원리에 의하여 통제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시대착오적인 군 사법제도가 온존하는 한 군인 인권보장의 최소한을 지키려는 노력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민주화 시대와 구분되는 표징인 '군사독재' 시절의 적폐에 대하여 우리는 단 한 번도 근본적인 제도개혁을 이룬 바 없다.
제대로 된 민주국가라면 군인은 마땅히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한 인권을 향유하는 존재임에 의심이 없어야 한다. 군인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 창설되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따라 확인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폐지를 포함한 군사법제도의 개혁과 군인인권법의 제정은 필수적인 것이며, 국가배상 및 국가유공자 제도 또한 헌법적 차원에서 재정립되어야만 한다.
지휘관의 제왕적 지위를 보장하며 군내 각종 사고의 진실을 은폐하는 주범으로 부각되고 있는 우리 군사법원법의 역사를 보면, 관할관의 권한이 점점 축소되는 것과 함께 심판관의 역할도 축소되는 쪽으로 개정됐다.
한마디로 일반 형사재판에 가까운 쪽으로 천천히 변해왔다. 애초 지휘관 사법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에는 재판부를 구성하는 3인 가운데 2인이 일반장교인 심판관이었다. 이러한 구성이 변호사 자격을 가진 군판사를 과반수로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 불과 1994년의 일이다.
무소불위의 사법권력을 행사하는 군 지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