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호 국정원장이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 앉아 있다. 배석은 뒷 줄 왼쪽 부터 이헌수 기조실장, 한기범 1차장, 김수민 2차장, 김규석 3차장.
이희훈
[① 원천 봉쇄의 오류] <위키리크스> 폭로를 근거 없이 무시하라
우리는 국정원의 입을 열도록 한 게 바로 <위키리크스>의 폭로 자료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 문건과 국정원 시인의 크로스 체킹을 통해, '국정원은 해킹 팀과 거래한 사실이 있다'는 팩트 하나는 밝혀졌다. 그런데 그 거래 내용에 대해서 국정원은 "내국인 사찰용이 아니며, 대북 연구용으로 20명분만 구입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위키리크스>는 이보다 훨씬 많은 내용과 내국인 사찰의 정황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이 나머지 내용을 전부 배척한 셈이고 자신들의 주장만이 옳다고 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한 뒷받침은 자신들의 내부 사용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위키리크스>를 믿지 않고, 국정원 자신들이 제시하는 자료만 믿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현재 국정원이 <위키리크스>의 신빙성을 배척해야 할 아무런 논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대뜸 사실이 아니라는 일방적 주장만 있다. 이를 기초 논리학에서는 '원천 봉쇄의 오류' 혹은 논점을 근거 없이 선점한다는 점에서, '논점 선취의 오류'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국정원의 변명엔 분명 논리적 오류가 있으며,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②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우리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 것이지국정원이 해명을 위해 제시하겠다는 '내부 사용기록'의 신뢰 효과는 국가 정보기관이라는 권위에 기댄다. 이것은 마치 '내가 가진 기록에 이렇게 쓰여 있으니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닮았다. 여기서 주어는 '나' 즉 '국정원'인데, 우리는 그 기록 자체가 아니라 그 기록의 소유자를 주목해야 한다.
그 소유자가 바로 국정원이며, 우리는 왜 하필 그 소유자와 그 소유물을 신뢰해야 하는지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단지 국가 정보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믿어야 할까? 오히려 국가 정보기관이기 때문에 더더욱 믿지 않을 수도 있다.
[③ 의문의 여지] 국정원의 일기장은 여러 개일 수 있다백번 양보해, 국정원이 제시하는 기록이 사실이라고 쳐두자. 그런데 왜 우리는 그 기록의 양이 국정원이 보여주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믿어야 할까. 그럴 이유는 없으며, 계속 의문의 여지를 남기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지금 논란이 스파이웨어(RCS)에 많이 쏠려있지만, 우리는 TNI라는 컴퓨터에 대해서 주목해야 한다.
해킹 팀 이메일 중 2014년 6월, 국정원이 TNI를 샀다는 내용이 있다. 이 TNI의 해킹 방식은 가짜 URL 등을 통해 RCS를 타깃에 심는 방식보다 훨씬 강력하다. TNI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와이파이망에 침투해 RCS를 직접 타깃에 심는다. 여의치 않으면 직접 가짜 와이파이 핫 스팟을 만들어 거기에 접속하는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TNI가 여러 개 존재하고 그만큼 복수의 기록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
이상의 문제 제기를 종합해 볼 때, 현재 국정원의 변명은 논리적 오류가 있으며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물론 이 문제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정황이 곧바로 사실이라는 결론으로 비약하게끔 이끌진 않는다. 다만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는, <위키리크스>가 국정원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신빙성에 좀 더 힘이 실릴 뿐이다.
국정원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첫째, 지금처럼 논리적 오류와 의문의 여지를 부담하면서 끝끝내 자신들의 입장을 억지로 관철하는 것. 둘째, 모든 정치적 논란을 해명하겠다는 마음으로 '특검'을 수용하는 것. 그러나 전자를 선택한다면, 국정원은 계속 국민 인식 속에 양치기 소년으로 남을 것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정치개입과 연이은 유우성씨 간첩혐의 증거조작 혐의 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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