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반빈곤권리장전 대원들이 노점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5반빈곤권리장전
반(反)빈곤권리장전에서 '노점상'을 하시는 분들에 대해 면접조사를 해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역설적이었다.
'아, 내가 노점상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고등학교 때 주변 노점상에서 가끔 닭꼬치나 어묵, 핫바 등을 사 먹긴 했지만 배고프고 바빠서인지 '천 원짜리 음식을 사서 먹는 곳' 이상의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떡볶이나 순대를 파는 분식집조차도 프랜차이즈화되어서, 흔히 노점상 하면 가장 많이 떠올랐던 분식 노점상조차 사라지고 있었다.
노점상에 대해서 머릿속에 마인드맵 그리듯이 떠올리니, '불법', '비위생적', '미관을 해치는'과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나와 마찬가지로, 대다수 사람은 노점상을 '세금을 안 내고 장사하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었고 포털사이트 댓글만 뒤져봐도 이러한 논리로 노점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노점상이 비위생적이며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 또한 나 이외도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직접 만난 노점상, 편견이 깨지다이런 편견을 가지고 조원들과 함께 6월 29일, 전국노점상총연합(아래 전노련)의 협조를 받아 삼양동 노점상분들이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듣게 되었다. 삼양동 시장 내부에 있는 총 21개의 노점이 우리의 면접 대상이었다. 날은 조금 더웠던 걸로 기억한다. 전노련 사무실이 있는 창동역에서 삼양동 시장 인근에 있는 미아사거리 역까지 가는 전철 안에서 조원 모두가 앉기를 포기하고 서서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삼양동 시장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놀랐던 것은 노점상 형태가 내가 생각하던 '떡볶이 등의 분식을 파는 포장마차'와 조금 달랐다는 것이다. 형태가 파라솔과 의자만 있는 형태의 노점상도 있었고, 파는 품목도 분식에서 뻥튀기 류의 과자, 멸치 및 건어물, 잡곡 등으로 다양했다. 기존에는 그냥 '재래시장의 일부', 그러니까 단순히 가게 중 하나로만 생각했던 점포들도 사실은 노점상이었다.
처음 인터뷰한 할머니께서 바로 파라솔과 의자만 있는 형태의 노점상을 하고 계셨다. 파라솔 그늘과 햇빛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비닐봉지에는 멸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할머니 잠시 노점상 하시면서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조사 좀 할 수 있을까요?"라고 내가 운을 떼자, "노점상 못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여?"라고 경계심을 보이셨지만 웃으면서 "아니라"고 하자, 살아온 얘기를 들어주셨다.
"내가 전남 순천에서 왔는데, 남편하고 같이 살다가 농사가 잘 안되어서 홀로 상경했어. 그러고부터 지금까지 노점을 하게 된 거여. 그게 20년 전이여."항상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주위는 까마득해지고 주변 소음은 안 들리고 하는 습관이 있다. 이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랬다. 너무 긴 생애가 몇 마디 말로 튀어나올 때는 침묵이 그 말들 사이의 공간을 먹먹하게 수놓기 때문일까. 농사가 안되어서 홀로 상경한 노인에게, 노점은 마지막 생계수단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금 여기서 일하는 것만 놔두었으면 좋겠고, 지금 경기가 안 좋고 일자리도 부족해서 멸치장사도 안되고 그려. 정부가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정부나 지자체를 향한 마지막 말씀을 부탁하자 소박한 바람, 이타적인 바람이 쭈글쭈글한 입에서 나왔다.
"가난 벗어나려 몸부림... 막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