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MBC
선덕여왕 당시, 서라벌에 있는 영묘사라는 사찰에 옥문지라는 연못이 있었다. 어느 해에는 겨울인데도 이 연못에 개구들이 모여들었다. 개구리들은 사나흘이나 계속해서 울어댔다. 참 해괴한 일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이 술렁거렸다.
그러자 귀족들이 선덕여왕에게 문의를 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본 것. 구중궁궐에 있는 여왕에게 이런 문의를 한 것은 여왕이 무녀의 능력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왕에게 점괘를 부탁했던 것이다.
선덕여왕의 점괘가 나왔다. 서라벌 근처의 여근곡이란 계곡에 백제 병사들이 숨어 있기 때문에 옥문지에서 개구리들이 울어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말을 듣고 신라군 2000명이 출동해보니, 여근곡에 정말로 백제군 500명이 숨어 있었다. 이들은 신라군에 의해 제압됐다.
이렇게 선덕여왕은 신비한 능력으로 얻어낸 정보에 기초해서 백제군의 서라벌 침투작전을 막아냈다. 500명을 사방에서 포위하는 데 필요한 2000명을 출동시킨 것을 보면, 선덕여왕이 꽤 용한 무녀의 특성을 겸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선덕여왕은 옥문(玉門)이란 이름이 붙은 연못과 여근(女根)이라는 이름이 붙은 계곡이 풍기는 성적 상징의 동일성을 기초로, 옥문지에서 개구리들이 우는 것과 여근곡에 백제군이 숨어 있는 것을 직관적 감각으로 연관시켰을 수도 있다. 그런 뒤에, 백제군의 숫자가 500명이라는 부분은 신비한 능력으로 알아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비합리적 방식으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옛날에는 무당의 속성을 어느 정도 보유한 인물이 왕위에 오르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의 입장에서도 군주가 그런 식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게 당연하게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신성한 군주가 정보기관을 동원해서 백성들의 뒷조사를 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게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무녀가 '할아버지'(신)한테 물어봐서 정보를 얻지 않고 사람을 시켜 뒷조사를 해서 정보를 얻어낸다면, 사람들은 "무당이 뭐 저래?"라며 비웃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무당은 무능한 무속인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마찬가지로, 옛날 사람들은 군주가 사람을 시켜 뒷조사를 해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을 부자연스런 일로 인식했다. 그것은 군주의 무능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군주가 백성들의 동향을 파악하자면, 은밀하게 정보팀을 꾸리든가 아니면 '청와대' 안에서 눈을 감고 점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법들은 몰라도, 군주가 공식적 첩보기관을 두는 것은 옛날 사회에서는 쉽지 않았다.
물론, 고대 국가가 공식적 정보기관을 두지 못한 것이 꼭 군주의 신성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대로 갈수록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전국적 규모의 정보기관을 둘 수 없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 이유는 신성한 군주가 백성들의 뒷조사나 하고 통신수단이나 훔쳐보는 것은 군주의 권위에 맞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명나라판 수양대군' 영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