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고... 다르고 두 차량이 같은 차량인지에 대한 의혹 제기를 보도하는 <경향신문> 7월 23일자
경향신문
지난 18일 오전 6시 무렵, 용인시 화산리 도로에는 빨간색 마티즈가 몇 대나 있었을까.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22일 당 최고위원회 자리에서 '마티즈 번호판' 의혹을 제기했다. 국정원 직원 임아무개씨의 빨간색 마티즈 차량 번호판 색깔이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그가 꺼내 든 사진 속 번호판 색깔은 한눈에 보더라도 같은 차량으로 보기 힘들다. 의혹 제기를 할 만한 이유다.
사진 속 마티즈 차량의 외형은 빨간색으로 같았다. 그러나 차량 번호판의 색깔이 달랐다. 하나는 '초록색', 다른 하나는 '흰색'이었다. 초록색은 임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차량의 번호판 색깔이다. 흰색은 임씨의 당일 오전 행적이라며 경찰에서 공개한 CCTV 속 차량의 번호판 색깔이다.
의혹을 제기한 전 최고위원은 "(두 차량을 같은 차량이라고 하는 것은) 초록색을 흰색이라고 우기는 행위다, 이러니 국민이 진실을 거짓으로 덮는다고 하는 것"이라며 경찰과 국정원의 해명을 요구했다.
전 최고위원의 의혹 제기에 경찰도 즉각 대응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빛 반사각도에 따른 착시현상"이라고 해명했다. 같은 차량이고, 같은 녹색 번호판인데 CCTV 속 마티즈 번호판은 햇빛에 반사됐기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전 최고위원은 다시 보도자료를 내고 경찰의 반박에 대해 "코미디에 가까운 해명"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마티즈 차량 번호판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차량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주장했다.
차량 번호판 의혹에 대한 경찰 해명, 민망하다 지금 이 순간, 임씨의 죽음과 관련된 가장 많은 증거 자료를 확보한 기관은 경찰이다. 수사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받는 사건이기 때문에 임씨와 관련해서는 여러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이때마다 경찰은 보유한 자료를 반대증거로 내놓아 의혹을 무력화시키면 된다. 이것이 수사기관인 경찰의 힘이다.
그런데 '마티즈 번호판' 의혹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빛 반사각도에 따른 착시현상'이란 해명에 당장 전 최고위원이 '코미디에 가깝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전 최고위원은 22일 오후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빛의 반사가 원색인 초록색을 흰색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해명도 사실 믿기가 어렵다"며 "(국정원과 경찰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할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해명을 하든가 조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YTN도 22일 오후 보도를 통해 "(번호판 색깔이) CCTV에서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CCTV 속 마티즈 차량의 번호판이 흰색으로 보인다면서 "다른 각도에서 본 영상에서도 (번호판 색깔은) 마찬가지입니다"라며 이 때문에 번호판이 사건 직후 '바꿔치기' 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른 언론의 보도태도도 유사하다. 'CCTV 속 번호판은 초록색'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난 18일 임씨가 집을 나선 시각은 오전 4시 50분 무렵. 그리고 CCTV에 마지막으로 잡힌 시각으로 알려진 것은 용인시 화산리 도로에서 사라진 오전 6시 24분께다. 경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약 1시간 반 동안에 임씨는 자신의 빨간 마티즈를 타고 이동했다.
만일 특정 장소에서 '빛 반사각도' 때문에 '초록색' 번호판이 '흰색'으로 보인 것이라면 해결은 간단하다. 경찰은 임씨의 사망 당일 행적을 90% 정도 확인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경찰이 보유한 CCTV 자료에는 빛 영향을 받지 않아 '초록색' 번호판'으로 보이는 CCTV 화면도 있을 것이다. 그 한 장을 언론에 내놓으면 된다. 그러면 의혹은 일거에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은 과학적 주장을 말로 할 뿐 구체적인 반박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대신 경찰은 오해의 소지를 없앤다는 이유로 CCTV 영상을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로 보냈다. 경찰은 정밀 감정 내용을 바탕으로 결과를 발표한다는 입장이다.
국회의원과 언론은 'CCTV 속 번호판 색깔이 다르다'는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인데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5일 동안 사건 수사를 담당한 경찰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증거 자료를 다른 기관에 보내 해석을 의뢰했다. 이는 과학수사 차원인가, 시간을 벌려는 목적인가.
정의당의 국정원 국민사찰의혹 진상조사단 단장인 서기호 의원도 22일 성명을 내고 "사건이 발생한 7월 18일 6시 20분께 용인 처인구의 날씨는 해가 뜨지 않고 가시거리가 10km이내의 안개가 낀 박무현상과 함께 약한 비가 내렸다"면서 '빛의 반사'가 가능하지 않았으며, 녹색이 흰색으로 보일만큼의 착시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인지 경찰에 거듭 의혹을 제기했다.
자신 없는 경찰 그리고 또 다른 의혹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