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들이 쓰는 간이화장실, 건설 노동자들은 당연히 그래도 된다는 생각이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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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보통 하나의 사건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사건으로 드러나기 전부터 차별은 존재한다. 이와 같이 드러나지 않은 차별을 사회화하기 위해서는 차별 당사자들이 느끼는 모욕감과 무시를 주목해야 한다.
"식당에 들어가면 간부 식당과 노동자 식당이 따로 있다. 반찬부터 다르다. 식당에서의 대우도 다르다. 화장실도 거의 간이 화장실인데 여름철에는 구더기에 파리가 날리고, 겨울에는 똥덩어리들이 얼어있다. 건설 노동자들은 당연히 그런 거라고 생각이 박혀있다. 사람이 사는 데 기본적인 것, 먹고 사는 것에서 오는 차별에서 내가 건설 노동자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 건설노동자2016년 최저임금 결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자주 들어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한 사람이 글을 남겼다.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보다, 육체 노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공장 노동자를 못 배우고,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누가 육체 노동을 하겠나며, 최저임금 인상은 이와 같은 인식의 변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노동에서의 차별은 이처럼 사람들이 느낀 '가치 훼손의 경험'이다. 건설노동자라는 이유로 사회와 공장에서 느끼는 모욕감, 공장 노동자를 못 배운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느끼는 분함 같은 감정은 존엄의 훼손에 대한 경험이며, 차별의 경험이다.
이렇게 모욕과 무시를 통해 차별을 설명하면 임금이나 현장의 처우로만 국한될 수 있는 문제 해결을 다른 방법으로 구성할 수 있다. 식당의 반찬, 대우, 화장실이 바뀐다고 해서 건설 노동자가 경험하는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차별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은 이들이 존엄성을 회복할 때다. 육체 노동의 가치, 건설 노동자의 존엄을 회복해야만 이들의 차별 경험은 사라질 수 있다. 이들의 가치와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동등한 대우, 동등한 임금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동등한 대우와 동등한 임금이라는 구호는 허공에 떠버리고 만다.
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하는 자본이와 같이 노동자의 존엄을 훼손하는 차별은 자본주의 역사에 언제나 존재해왔다. 아동, 여성, 인종, 학력, 국적과 같은 정체성은 자본주의 역사 전체를 관통해온 차별의 역사다. 자본은 낮은 임금, 위험한 작업에 낮은 위치의 사람들을 몰아넣으며 무수히 많은 이득을 얻었다. 이와 같은 차별에 노동자는 저항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은 법을 지키라는 외침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우리를 존엄한 사람으로 대우하라는 저항의 외침이 있었다.
노동자의 저항에 자본은 잠시 물러났지만, 다시 '차별'을 끄집어 와 노동자의 저항을 무마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의 등장이었다. 비정규직 제도의 도입, 직무와 직제의 다양화, 끊임없는 구조 조정은 성·인종·장애·학력 등 전통적 차별의 힘과 맞물려 저항의 힘을 무력화하고 노동자를 분리했다.
효율성 또한 등장했다. 자본이 효율적이라고 말하는 방식대로 노동자들은 배치됐다. 무엇이 효율적인지 알 수 없었다. 노동의 가치는 노동자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오직 자본에 의해 결정됐다. 노동의 가치가 훼손되는 과정에서 자본은 더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사람,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해도 되는 사람으로 노동자의 가치를 결정했다.
계속되는 저항에도 자본은 점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었다. 사회에서 발휘되는 차별의 힘이 적극 활용됐다. 저학력 노동자, 고령 노동자, 여성 노동자들이 낮은 곳으로 밀려났고, 강력한 구조 조정의 힘에 의해 형성된 비정규직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낮은 가치의 노동으로 만들었다. 특정 직무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명명하며 낮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했고, 어떠한 일에서 중심 업무와 주변 업무를 규정해 주변 업무에는 낮은 가치를 부여했다.
이 같은 과정은 인격과 존재의 위계화 과정이었다. 위계화는 임금을 적게 주거나 노동 조건을 나쁘게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기업 안에서 그 사람의 위치를 특정하고, 그 위치에 따라 노동자의 존재와 인격을 차등화했다. 이 과정은 나의 위치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의 위치도 각인하도록 만들었다. 작업복 색깔, 호칭, 휴가 사용, 휴게실 사용 제한, 현장통제는 이와 같은 위계화 과정의 현상이었다. 결국 위계화 과정, 노동에서의 차별은 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했고 자본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었다.
노동자의 존엄